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자기색깔 만들기 1

푯말 2014. 4. 18. 10:12

고등학교 1학년 때, 내 앞줄에 앉았던 아이는 녀석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이 녀석’, ‘그 녀석등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새끼’, ‘이라는 표현에 익숙해져있던 나에게 녀석이라는 그의 표현은 매우 신선했는데, 하지만 며칠 지나자 말끝마다 녀석을 붙이던 그의 말이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저 놈은 만날 녀석이래.’

그러다가 며칠이 좀 더 지나니 이번에는 그의 말이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녀석이라는 말이 지겹지도 않니? 차라리 새끼라고 해라.”

하지만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그는 이 녀석’, ‘저 녀석말했는데, 그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한동안 서로 말도 않고 지낼 만큼 다툰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그 아이에게 했듯이, 나의 습관적인 말이나 행동에 짜증을 내는 아이가 한 명, 두 명 나타나기 시작했다.

너는 만날 똑같아. 지겹지도 않니?”

그리고 그중에는, 역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싫증이 난 내 말이나 행동을 꼬집어 고치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고, 아예 한두 아이는 잔뜩 얼굴을 찡그리면서 못 본 척 나를 외면하기까지 했는데, 그 뒤에도 몇 차례 더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나는 사람이 반복되는 자극에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록 처음에는 매우 신선했다고 해도, 똑같은 자극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 사람은 곧 지루함을 느끼게 되며, 그런데도 계속되면 사람은 반복되는 자극에 잔뜩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똑같은 반찬을 끼니때마다 반복해서 먹을 때처럼.’(물론,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정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좀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매우 오랫동안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한다고 알고 있었던 데다, 내가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일 때 부모님 등 주변사람들이 안정감을 느꼈고, 그 반면, 내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다들 불안해했으니.

이상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그래서 한동안 갈등했는데, 그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더 만나고 난 한참 뒤에야 겨우 나는 누구인가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누구인가는 잔뜩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