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색깔 만들기 1
고등학교 1학년 때, 내 앞줄에 앉았던 아이는 ‘녀석’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이 녀석’, ‘그 녀석’ 등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새끼’, ‘놈’이라는 표현에 익숙해져있던 나에게 ‘녀석’이라는 그의 표현은 매우 신선했는데, 하지만 며칠 지나자 말끝마다 ‘녀석’을 붙이던 그의 말이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저 놈은 만날 녀석이래.’
그러다가 며칠이 좀 더 지나니 이번에는 그의 말이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녀석이라는 말이 지겹지도 않니? 차라리 새끼라고 해라.”
하지만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그는 ‘이 녀석’, ‘저 녀석’ 말했는데, 그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한동안 서로 말도 않고 지낼 만큼 다툰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그 아이에게 했듯이, 나의 습관적인 말이나 행동에 짜증을 내는 아이가 한 명, 두 명 나타나기 시작했다.
“너는 만날 똑같아. 지겹지도 않니?”
그리고 그중에는, 역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싫증이 난 내 말이나 행동을 꼬집어 고치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고, 아예 한두 아이는 잔뜩 얼굴을 찡그리면서 못 본 척 나를 외면하기까지 했는데, 그 뒤에도 몇 차례 더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나는 사람이 반복되는 자극에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록 처음에는 매우 신선했다고 해도, 똑같은 자극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 사람은 곧 지루함을 느끼게 되며, 그런데도 계속되면 사람은 반복되는 자극에 잔뜩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똑같은 반찬을 끼니때마다 반복해서 먹을 때처럼.’(물론,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정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좀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매우 오랫동안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한다고 알고 있었던 데다, 내가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일 때 부모님 등 주변사람들이 안정감을 느꼈고, 그 반면, 내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다들 불안해했으니.
‘이상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그래서 한동안 갈등했는데, 그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더 만나고 난 한참 뒤에야 겨우 나는 누구인가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누구인가는 잔뜩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