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3. 17:04ㆍ푯말의 대화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저는 질투를 너무 많이 해서 몹시 힘듭니다. 누구인가 저보다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호의적이면 도무지 참지 못하고 아주 불같이 질투하기 시작하죠.
아직 그 명확한 이유까지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 질투하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아니, 사람이 질투를 안 할 수 없죠. 그러니 사람은 구조적으로 질투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면 정확한데, 따라서 그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쓸데없이 그 자체를 문제시한다면 보나마나 ‘나는 문제가 있다’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점점 자신이 싫어질 것이니까요.
Q : 너무 많이 질투를 해서 이제는 사람들이 아예 저를 피할 정도가 되었는데요?
무엇인가 오해를 하시는 듯싶은데, 단지 질투를 많이 해서 그런 결과를 맞은 것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질투를 하거나, 혹은, 그 정도가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질투의 대상이, 즉, 누구를 질투하는가가 문제를 만들거든요.
또, 질투를 해도 되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이를 구분하지 않고 무턱대고 질투하다보면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마구 생기게 되죠.
Q : 누구를 질투하는가가 문제를 만든다고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질투해도 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데 정작 질투해도 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질투하면 안 되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아무 때나 마구 질투한다면 당연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겠죠? 지금 겪는 어려움도 보나마나 그 때문일 것입니다.
Q : 그럼 질투하면 안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어서,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질투하면 안 되겠죠. 만약, 그렇게 한다면 결국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미워하면서 계속해서 싸우게 될 테니까요. 또, 선생과 학생은 서로 질투하면 안 될 겁니다.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을 질투해서도 안 될 것이고요. 그리고 그밖에도 엄청나게 많은 경우들이 있는데, 따라서 기본적으로 자신과 형편이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이해하면 되겠군요.
Q : 왜죠?
예를 들어서, 마라톤선수와 역도선수처럼, 서로 형편이 다른 사람들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니까요. 더구나 그중에는 서로 힘을 합해야할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무작정 질투하는 것은 결국 어리석은 행위가 되죠.
Q : 그렇다면 저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당연히 자신은 누구를, 즉, 주로 어떤 사람들을 질투하는지 곰곰 따져봐야죠.
그 뒤에는 질투해도 괜찮은 사람들을 질투하기 위하여 노력해야하고요. 자신보다 공부를 더 잘 하는 사람이라든가, 혹은, 자신보다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라든가.
그렇게 하다보면 빠른 시간 안에 여러 가지로 지금보다 훨씬 성장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Q :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울까요?
그렇다고 평생 동안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이나 질투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막상 알고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요. 또, 엉뚱하게 자신과는 전혀 다른 형편의 사람들이나 질투하며 이 세상을 살아갈 수도 없고요.
Q :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푯말님은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군요. 질투 자체를 죄악시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들었는데.
사람들의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하나도 없답니다. 무엇이든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성공하는 결과를 맞을 수도 있는 반면, 멸망하는 결과를 맞을 수도 있을 뿐인데, 결국 성공한다면 잘 사용한 것이 되고, 이와는 달리, 멸망하는 결과를 맞는다면 무엇이든지 잘못 사용한 것이 되죠. 그러니 무엇이나 그 자체를 죄악시하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Q : 질투 역시 마찬가지인가요?
그렇습니다. 질투 역시 어떤 각도에서 보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나 가치는 계속해서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서, ‘발전’이라는 각도에서 보면 질투란 아주 좋은 그 원동력이 될 수 있거든요. 또, 사람이 명확한 ‘자기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질투란 반드시 필요한 도구랍니다. 이 세상이 사람들에게 자꾸만 경쟁을 유도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 하지만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그렇게 하다보면 자칫 아무나 마구 질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그래서 고통을 겪는 것이고요.
Q : 그러니까 무조건적인 질투는 하지 말라는 말씀이네요?
맞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그렇게만 생각하기보다는, 늘 상대가 질투해도 되는 형편의 사람인지, 또, 질투해도 괜찮은 경우인지 먼저 하나하나 생각해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그렇게 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고 이해하면 훨씬 좋을 듯싶군요.
그렇게 하기만 해도 계속적인 자기발전이 이루어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