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4. 11:03ㆍ세상 속 이야기/객관적으로 본 성경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처음, 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을 다스릴 왕으로 창조됐다는 사람.
이 말대로라면, 사람은 이 세상의 동물들에 대해서 흠을 잡는 등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면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사람의 다스림을 못 받은 채 소외되어 불만을 갖는 동물이 계속해서 생기기 때문.
왕이나 대통령 등 지도자란 기본적으로 자신을 좋아하는 국민은 물론이고 자신을 싫어하는 국민도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하건만, 먼저 나서서 선악을 나누다니.
이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아직 부족하다는 증거가 될 것인데, 또, 이렇게 된다면 심지어 왕인 사람에게 저항하는 등 반발하는 동물이 계속해서 생길 수도 있으며, 결국 반란을 일으키는 동물이 계속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즉, 사람을 매우 위험하게 만드는 동물이 계속해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동물들을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몹시 위험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여호와가 사람에게 단호하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경고했던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을 듯.
더구나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 역시 여호와가 스스로 흡족해했던 창작물들이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1)
그렇다보니 사람이 동물들을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곧 동물들을 창조한 여호와의 의도와 창조행위를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는 행위.
성경의 사실 여부를 떠나, 모두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 그렇게 창조한 것이건만, 어떻게 아담이 감히 마음대로 여호와의 의도와 창조행위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창조주인 여호와에게 도전하는 꼴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래서 성경에 근거하면, 어떤 의미로든지 아담은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만든 로봇이 자기의 마음대로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판단하면 안 되듯이.
그런데 이토록 위험한 결과를 낳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여호와는 왜 하필이면 사람이 사는 곳의 중심이 되는 곳에 심어놓았을까?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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