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

2011. 10. 19. 03:04세상 속 이야기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 혹은,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종종 이렇게, 무엇인가 아주 대단한 것을 깨달았다는 듯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이 말에 감동을 받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정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정답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사실, 이 말은 이 세상에 정답이 있는지조차 전혀 찾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막 살아가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정답이 있는지 알아보기에 앞서, 과연 정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만 했더라도 감히 이렇게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인데, 그러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생각 없이 인생을 막 사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물론, ‘나(我)’, 즉,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

바로 이것인데,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와 언뜻 비슷한 듯도 싶지만, ‘정답’과 ‘정해진 것’은 분명히 다르며, 전체적인 의미 역시 전혀 다르다.

더구나 ‘나(我)’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깨달음이란 토씨 하나조차 바꾸기 몹시 어려울 정도로 매우 세밀해서 ‘정해진 것’을 ‘정답’이라고 바꿨다가는 엄청난 혼란과 오류가 끝도 없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다보니 쉽게 바꿀 수 없는데, 또, 부분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해도 그 범위가 정해져있다 시피하다.

이런 까닭에 정작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차마 허용된 범위 이상으로 바꾸어 표현하려는 생각조차 못한다.

그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을 비롯한 ‘나(我)’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다른 깨달음처럼 그대로 계속되어오고 있는 것인데, 따라서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라는 말은 실제로 인생의 정답이 있는가 하는 의문은 물론, ‘나(我)’를 알아가는 것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런데 이 말은 인생을 아무렇게나 막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

이 말에 따르면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에, 성폭행이나 성추행은 물론, 연쇄살인을 해도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막 살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