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호걸의 실체

2011. 10. 24. 11:16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삼국지’의 관우나 장비, ‘수호지’의 송강, 무송, ‘초한지’의 항우, 한신 등.

중국의 고전 역사소설에는 흔히 영웅호걸이라고 부르는 장수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영웅호걸들은 성격도 매우 호탕하며 대범한데다, 용맹해서 싸움도 잘하고 술과 여자까지 좋아했다는데, 이 때문인지 아직도 수많은 남자들이 부러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장수들 역시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을까?

먼저, 이 영웅호걸들은 싸움터에 나서면 나라를 위하여, 승리하기 위하여 칼이나 창 등의 무기로 적을 아주 잔인하게 죽여야 했으며,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적의 팔이나 다리를 잘라 더 이상 도전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즉, 이 장수들은 싸움에 나서면 ‘이번에 내가 죽거나 다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긴장감에 늘 시달려야, 그런 상태에서 계속해서 피를 흘려야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평소 적을 최대한 빨리, 많이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훈련했을 듯싶은데, 또한, 이 영웅호걸들은 때로 조금 전까지도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몹시 아끼던 부하나 선후배 장수들이 목이 잘리거나 창자가 터져 나와 끔찍하게 다치거나 죽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했고, 그중에는 자신의 형제나 자식까지 모가지가 뎅겅 잘려 순식간에 시체가 되는 것을 눈뜨고 봐야했던 이들도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것도 쉽게 감당하지 못하건만, 군인이라는 이유로, 장수라는 이유로 적은 물론, 친구나 가족의 죽음마저 억지로 감당해야했던 이 영웅호걸들.

과연 그 심정이 어땠을까 싶은데, 더구나 첩자 등 숨어있던 적들도 많았던 까닭에 이들은 꼭 전쟁터가 아니었다고 해도, 꼭 적들과 맞닥뜨리지 않았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죽임을 당하거나 붙잡혀 포로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긴장감에 마음 편히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는 못했을 것이며, 어느 한 순간이라도 긴장을 모두 풀고 쉬거나 잠을 자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감과 긴장감을 느낄 때, 그것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흔히 술을 마시며, 불안감과 긴장감의 크기가 커질수록 마시는 술의 양도 늘어난다.

그래서 평소에는 술을 전혀 입에 못 대던 사람마저 두주불사의 호주꾼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영웅호걸들이 술을 많이 마셨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과연, 이 영웅호걸들은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누구인가를, 심지어 그 부모 앞에서도 죽여야 했던 자신의 삶에 만족했을까?(사진 : 맥조휘 감독의 영화 ‘삼국지 : 명장 관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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