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선수

2014. 4. 28. 10:40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어느 날, 그날 처음 알게 된 한 여학생에게 좀 짓궂게 치근거린 적이 있었다.

마치 괜찮다는 듯 그녀가 별다른 대꾸가 없었기에 계속해서 치근거렸는데, 그러던 어느 순간, 더 이상 못 참겠던지 그 여학생은 함께 있던 내 친구에게 퉁명스럽게 한마디 툭 내뱉고는 어디로인가 휙 사라져버렸다.

얘네 학교 애들은 다 이러니?”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란.

한편으로는 울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몇 가지 생각이 연달아 떠올랐다.

나 한명한테 기분이 나쁘다고 왜 우리학교 학생들 전체를 싸잡아 욕하지? 내가 우리학교 학생들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건만.’

그러다가 문득 그 아이에게 나는 우리학교 전체 학생들의 대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아이가 이제까지 우리학교에 다니는 다른 학생을 한명도 못 만나봤다면 나 때문에 우리학교 학생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 순간, 학교친구들은 물론, 많은 선배들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 날, 내가 비록 내 가족이나 내 학교의 대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내 가족이나 내 학교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는데, 그러자 어릴 때 기억나지 않는 한 어른으로부터 어렴풋이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다.

대문을 나서면 네가 가족의 대표다. 그러니 집 밖에서는 부모님과 가족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말하고 행동해야한다.”

그래서 누구인가 말썽을 부리면 사람들이 꼭 그 부모를 욕하는 것이었군.’

이런 생각까지 들자 갑자기 나의 모든 현실이 숨이 콱콱 막힐 만큼 몹시 버겁게 느껴졌다.

이제 겨우 17살짜리인 내가, 더구나 아직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는 내가 어떻게 내 가족을, 내 학교를 대표할 수 있을까?’

뒤이어 외국에 나가면 내가 모든 대한국인을 대표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자 나의 현실이 더욱 버겁게 느껴졌고, 그로부터 며칠을 그 중압감에 시달리며 보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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