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가와 행동가

2014. 4. 11. 15:28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를 하던 시절.

당시 다니던 학원에는 말이 아주 능수능란하던 달변가 강사 한 분이 계셨다.

어느 날, 그 분은 주변사람들에게 너는 말만 번드르르하게 할 뿐, 행동은 안한다.’ 지적받을 때가 있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잠깐 들려줬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은 늘 똑같은 대꾸한다고 했다.

나는 이론가일 뿐, 행동가는 아니야.’

그 말이 어찌나 멋있게 들리든지.

순간, 나뿐 아니라 같이 있던 학원생들 모두가 한꺼번에 감탄의 탄성을 내질렀다.

우와!”

이어 나도 언제인가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꼭 저 말을 써먹어봐야지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저 말만 번드르르하게 할뿐 행동은 안하는 말쟁이의 말장난에 속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실제로 써먹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뒤로 생각해보니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얄팍한 말장난을 하던 말쟁이가 결코 적지 않게 있었다.

툭하면 자신은 약속을 안 지키면서도 남에게는 약속을 꼭 지켜야한다고 말하거나, 자신은 쉽게 배신을 하면서도 남들에게는 의리나 신용을 꼭 지켜야한다고 말하던.

내가 알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까닭에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고 말았건만, 사실은 내가 말쟁이들의 얄팍한 말장난에 속은 것이라니.

뿐만 아니라, 생각해보니 못된 짓을 하는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얄팍한 말장난을 하던 말쟁이도 적지 않게 있었다.

사랑의 매를 핑계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내 어린 날의 몇몇 교사들처럼.

이런 사실을 알고부터 한동안 좀처럼 이해되지 않던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기억나는 대로 곱씹어봤는데, 기억날수록 내가 참 멍청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렇게 멍청하니 툭하면 말쟁이들한테 속았지

그래서 그 뒤부터는 내 나름대로 말쟁이들에게 속지 않으려고 조심했지만아직도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중에는 성직자나 정치가 등의 자신의 권위를 악용해서 얄팍한 말장난을 일삼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게 있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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