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2011. 8. 19. 17:00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이번 겨울에는 시간을 내서 저도 제주도의 올래길을 걸어보려고 합니다.

아무리 제주도가 따뜻하다고 해도 겨울바람이 부는 바닷가를 걷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Q : 제 자신을 좀 돌아보려고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나 할까요?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다보니 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것 같아서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 정도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겠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더구나 제주도의 그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걷다보면 온전히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힘들 것 같군요.

또, 차가운 바닷바람 때문에 그저 달달 떨기만 하다가 올 수도 있고요.

Q : 물론, 그런 것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구경도 할 겸 가는 것이니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겨울에 올래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그들도 다들 무척 좋았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결심하게 되었죠.

저는 그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말씀하셔서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겸사겸사 가시는 것이라면 제가 쓸데없는 참견을 한 듯싶군요.

Q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별달리 있겠습니까? 어디를 가든지,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나를 찾는 여행’이 되겠죠.

무엇인가 오해를 하시는데, ‘나를 찾는 여행’이란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눈에 보이는 여행이 아니랍니다. 그렇다보니 아주 캄캄한 토굴 속에 갇혀있어도, 몹시 음습한 골방 안에 갇혀있어도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죠. 실제로 그랬던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고요. 저 역시, 그렇게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나’를 찾아 헤맸던 것이 아니라, 주로 불과 두 평 정도인 제 방 안에서 그 여행을 오랫동안 계속했답니다.

Q :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를 찾는 여행’이란 원래 돈이 한 푼 없어도,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할 수 있죠. 그뿐 아니라, 학교에 가거나 열심히 일을 하는 중에도, 즉,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고요.

Q : 음

이따금씩, ‘나는 돈이 없는 까닭에, 시간이 없는 까닭에 나를 찾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런 말들은 순 거짓말입니다. 그 머릿속에 엉뚱한 것만 가득하다 보니 자신에 관심 갖지 못하는 것을 그렇게 핑계 대는 것뿐이죠.

Q : 그래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자신을 찾으러 산으로 간다는 사람들도 있고, 또, 자신을 찾기 위하여 여행을 떠난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도피욕구가 있는 까닭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마치, 행복을 찾아서 헤맸다는 파랑새의 주인공들처럼 말입니다.

‘나’는 늘 여기에 있건만, 도대체 어디에 가서 ‘나’를 찾겠다는 말인지 모르겠어요.

Q : ‘나’는 늘 여기에 있다?

그러니 토굴 속에 갇혀있어도, 혹은,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나’를 찾을 수 있는 것이죠. 저도 한때, ‘나를 찾아서 산에 간다’, ‘나를 찾아서 여행을 간다’ 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참 멋있다 생각했죠. 그래서 그 당시, 그런 사람들을 따라서 산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볼까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막상 알고 보니, 그런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나’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생각해보지 않고 ‘나를 찾는다’ 말하더군요.

Q : 음.

요즘은 몇몇 얼빠진 연예인들까지 온갖 폼을 잡으면서 그런 말들을 따라하고 있던데, 혹시 그런 말장난에 감동을 받아서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인가요? 이런, 쯧쯧. 만약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감기와 얼어붙은 몸 밖에 얻은 것이 없다’ 등으로 후회하지 말고요.

Q : 그렇게 혀를 찰 정도로 그런 말들이 형편없나요?

생각해보세요. 자기가 찾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산에 가면, 또, 무조건 여행을 가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무엇인가 찾는 것이 있다면 최소한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충분히 알아본 뒤에 떠나야하지 않겠어요?

Q : 물론 그렇기는 하죠.

‘나’가 어디에 있을지 아예 생각해보지도 않고, 전혀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렇게 무모하게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어디에 가서 무엇을 찾을 수 있겠어요?

Q : 음.

조심하십시오. 또 이야기하는데, 이 세상에는 온갖 그럴듯한 말들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의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자칫 그들의 말에 휘둘렸다가는 이제까지 그들이 겪었던 온갖 시행착오만 따라서 겪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갖고 있던 모든 것만 잃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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