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종교

2011. 8. 19. 18:22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혹시, 푯말님도 종교가 있나요?

아니요. ‘나’를 찾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종교에나 의지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느니 차라리 어떤 종교로 가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낫겠죠?

Q : 그렇겠죠. 그럼 이제까지 종교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으셨나요?

물론, 과거에는 한참동안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종교에는 더 이상 관심 갖지 않게 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무교입니다.

Q : 네에.

‘나’의 속에 모순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결코 온전하게 ‘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나’의 속에 있는 모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그때까지 ‘나’의 속에 있던, 종교 때문에 생긴 여러 가지 모순들을 차례대로 해결하다보니 어느 새 그렇게 되더군요.

Q : 아하.

더구나 종교에서도 ‘나’에 대하여 설명해주거나, ‘나’를 찾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더욱 미련 없이 종교로부터 떠나게 되었죠.

Q : 그렇다면 ‘나’를 찾는 것과 종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나를 찾기 위하여 종교에 의지한다’, ‘나를 찾기 위하여 성직자가 되었다’ 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찾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었으리라 의심되는 사람은 몇 명 있지만.

Q : 그럼 ‘나’를 찾기 위하여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물론, 종교와 종교인이, 종교와 성직자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 종교를 찾게 되면 종교인들이나 성직자들에게 그 종교에 대한 여러 가지를 배울 수밖에 없는데, 종교인들이나 성직자들 중에 ‘나’를 찾았다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종교에 의지해서 ‘나’를 찾는데 어떤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Q : 그러니까 한마디로, 종교를 통해서는 ‘나’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종교인들이나 성직자들을 통해서는 ‘나’를 찾을 수 없다는 말씀이네요?

좀 더 정확하게는, ‘그 가능성이 매우 적다’라고 말해야겠죠. 더구나 성직자들 중에는 말로는 ‘나를 찾는다’ 연신 떠들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무지 많아요. 그런 성직자들 역시 ‘무조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가르치죠. 과연 그 말대로 한다면 ‘나’를 찾을 수 있겠어요?

Q :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성직자들 중에는 이상한 사람들도 좀 있더군요.

그러게요. 잘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뻔히 알고 있는 나야 오죽할까요? 그뿐 아니라, 몇 십 년이나 ‘나’를 찾기 위하여 노력했다는 성직자들 중에는 겨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도 모르는 성직자들도 수두룩합니다. 그런데도 몹시 대단한 척하죠.

Q :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깨달음 아닌가요? 갑자기 왜 그 말씀을 하시죠?

사람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제까지 미처 모르고 있던 여러 가지 사실들을 계속해서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인데, 그중의 한 가지가 바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이죠.

Q : 그래요?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어느 정도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들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인데, 아직 그만큼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결코 높은 수준의 깨달음은 아니니 이제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머지않아 직접 깨달을 겁니다.

Q :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때가 되면 내 말을 좀 더 온전히 이해하게 되겠죠. 아무튼, 그런 형편이다 보니, 종교인들 중에는 자기보다 못한 수준의 성직자들에게 배우고 있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마치, 대학생이 초등학생에게 배우듯이 말입니다.

Q : 네에. 그런데 초등학생에게 배울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실제로 그런 경우도 적지 않게 있잖아요?

물론, 그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자신을 더 모르는 사람에게, 마치 대학생이 초등학생에게 더하기나 빼기를 배우듯이, ‘나’에 대하여 배운다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 그 배운 것을 몹시 귀하게 여기고, 또, 덩치 큰 대학생이 초등학생의 조그만 옷을 억지로 입는 것처럼, 그 배운 것에 억지로 자신을 꿰어 맞춘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Q : 물론, 그런 경우라면 다르겠죠. 즉, 단지 배우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배우는 가에 따라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나’를 찾는 근거란 오직 ‘나’ 뿐이랍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선배들이 ‘내 안에 답이 있다’라고 말한 것인데, 진정으로 ‘나’를 찾고 싶다면 엉뚱한 것에 관심 갖지 말고, 오직 자신을 알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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