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진 남자

2012. 1. 6. 12:20세상 속 이야기

함께 공직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자살한 것을 계기로 해서 부정부패가 만연한 대한민국 공직사회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직장은 물론, 나이 어린 자식 등, 가족까지 모두 팽개치고 16년 전 집을 나왔다는 한 남자.

하지만 그렇게 많은 것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는 엄청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뿐만 아니라, 지난 16년 동안 가족들을 엄청난 고생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실제로 이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보니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와 16년 동안 가족들을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

지금, 그 미안함과 죄책감은 커다란 십자가로 형상화돼 그의 어깨를 아주 무섭게 짓누르고 있는데, 과연 그는 진정 부정부패가 만연한 대한민국 공직사회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가족과 직장을 모두 팽개쳤던 것일까?

먼저, 16년 전 절친한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누명을 쓰고 자살했다는 것은 분명 이 남자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며, 그래서 친구를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공직사회에 엄청난 분노와 심한 환멸을 느꼈을 것이고, 더불어 ‘나도 실수한다면 친구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매우 심하게 느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더욱 심한 환멸을 느꼈을 수도 있는데, 정작 중요한 사실은, 평범한 사람이 이 모두를 한꺼번에 감당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또, 괴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도무지 견딜 수 없어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 어디로인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백번도 더 했을 것 같은 이 남자.

더구나 당시 그 누구로부터도 충분한 이해나 위로를 받지 못했다면 더욱 그랬을 듯한데, 그렇다면 이 때문에 그는 결국, ‘부정부패가 만연한 대한민국 공직사회에 정의를 실현해보겠다’는 명분으로 집과 직장을 모두 떠났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16년 동안이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그를, 지난 16년 동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그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과연, 그는 16년 동안이나 비워두었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과연, 그는 언제나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새로운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사진 : MBC <TV특종 놀라운 세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