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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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한 세상 2
어린 시절, 무슨 일을 하든지 꼭 생색을 내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 잘했지?’, ‘이거 내가 한 거야’ 등으로. 그러다가도 남이 생색을 낼 때면 무척 싫어했는데, 그러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 아이는 쉽게 무시했다. 자신에게 해준 것이 없다거나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면서. 그렇다보니 그 아이들은 가끔씩 생색을 내지 않는 아이들과 서로 자신이 이전에 해줬던 것을 하나씩하나씩 들춰가면서 서로 다퉜는데, 결국 생색을 내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착한 아이’라는 듯, ‘좋은 아이’라는 듯. 그 반면, 더욱 열심히 했으며, 더욱 많은 도움을 줬는데도, 생색을 내지 않는 아이들은 좀처럼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생색을 내기 좋아하는 아이들을 인정하던 사람들에게 어렴풋이 배신감을 느꼈었는데..
2014.04.17 -
불공평한 세상 1
훈련병 시절의 어느 날, 같이 훈련을 받던 동기 한명이 몹시 힘들다는 표정으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내무반장 때문에 못살겠다.” 그래서 혹시 혼자 불려가 내무반장에게 따로 혼난 적이 있나 싶었는데, 그런 것은 전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혼자만 괴롭힘을 당했다는 듯 말하지? 우리 소대의 훈련병들 모두가 똑같이 얼차려를 받았으며, 더구나 얻어맞기도 하는 등 내무반장에게 정작 더욱 심한 대우를 받았던 동기들은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건만’ 하나하나 따지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표정이 대뜸 굳어지며 뚱딴지 같이 “너는 몰라” 말하고는 휙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뭐야? 내가 뭘 모른다는 거야?’ 하지만 그에게서는 더 이상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어 그냥 잊고 말았는데, 그 뒤로 보니 여러..
2014.04.16 -
씨 뿌리는 사람들 2
고등학생 때까지 알던, 나쁜 친구 때문에 말썽쟁이가 됐다는 아이들 중에는 많은 상처를 받는 등 자신의 부모로부터 오랫동안 잔뜩 억눌렸던 아이가 몇 명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는데, 그렇다보니 그때까지는 그 아이들이 그렇게 된 것이 그저 개인의 책임이라고만 생각했다. ‘저 아이들은 나쁜 친구 때문에 말썽쟁이가 된 것이 아니라, 여느 아이들은 갖고 있지 않은 무엇인가 나쁜 씨를 마음속에 이미 갖고 있었던 까닭에 말썽쟁이가 된 것이며, 그들의 나쁜 친구는 그저 그 씨가 싹틀 수 있는 물만 주었을 뿐이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이번에는 그 ‘씨’를 뿌린 존재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가 저렇게 나쁜 씨를 뿌려서 순진한 아이들을 말썽쟁이로..
2014.04.16 -
씨 뿌리는 사람들 1
‘친구를 잘못 사귀어 애가 저렇게 되었다.’ 어린 시절, 싸움질이나 가출을 일삼는 등의 말썽쟁이들에게는 어른들이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부모는 물론, 그 밖의 다른 어른들 역시. 그래서 당시에는 친구를 잘못 사귀면 누구든지 말썽쟁이가 되나보다 생각했는데, 이런 까닭에, 어릴 때는 말썽쟁이를 친구 때문에 망가진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 시절 알게 된, 친구 때문에 망가진 말썽쟁이들 중에는 오히려 친구를 말썽쟁이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아주 흔했다. 함께 패싸움을 하자거나 함께 가출을 하자고 자꾸 꼬드기는 등으로. 그러다가 결국 자신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 친구는 따돌리거나 심지어 괴롭히기도 했는데, 그런 그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저 사람들이 앞장서서 친구..
2014.04.15 -
주먹이 앞선다는 것은 2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인가부터 돈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싸움 뒤, 다친 피해자에게 적당히 보상금을 주고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는 등의. 또, 드물게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좀처럼 해결이 안 되는 문제에는 친척 중 경찰 등의 권력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을 동원하는 등으로.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돈이나 권력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알았는데, 그러자 내 머릿속은 좀 더 복잡해졌다. ‘누구인가와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처음에 말로 해결하려고 하며,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고, 그런데도 해결이 안 된 문제는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며, 그렇게 했어도 해결이 안 되면 권력에 호소하는..
2014.04.15 -
고통에 익숙해지다
훈련병 시절, 훈련소에 입소하던 첫날부터 나와 동기생들은 매일 밤마다 무서운 내무반장에게 온갖 이유로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몹시 고통스러운 얼차려에 받아야했다. 깍지 끼고 엎드려뻗치기, 원산폭격, 한강철교 등등의. 더구나 저녁까지 고된 훈련을 마친 뒤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얼차려를 받을 때면 다들 더욱 죽어났는데, 오죽하면 하루 중 잠자기 직전이 가장 두려울 정도였다. 그러다가 훈련이 후반기로 접어들 무렵쯤, 내무반장이 날마다 계속하던 얼차려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루 이틀 거르기 시작했다. ‘웬일이지?’ 하지만 처음에는 내무반장이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더구나 무슨 까닭이든지 얼차려를 안 받으면 우리는 좋았으니. 그러나 그 뒤로 얼차려가 더욱 줄어들..
201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