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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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더러운 남매
‘성질은 더러워서…’ 몇 년 전까지 아들과 딸이 발칵 화를 낼 때면 이따금씩 이렇게 놀려댔다. 그때마다 대뜸 얼굴이 굳어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쩔쩔매던 아들과 딸. 그 모습이 재미있어 자꾸만 놀려댔던 듯싶은데, 그러던 어느 날인가 아들이 역시 잔뜩 표정이 굳은 채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제 성질이 못됐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 그만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그 말을 들으니 아들이 자신의 성격 때문에 적지 않게 고민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 나도 그랬었지’ 젊은 시절, 때로는 우유부단했던, 때로는 즉흥적이던, 또, 때로는 더럽던 내 성격 때문에 때로 ‘나는 성격이 왜 이 모양일까?’라고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특히, 안정감이 없는 성격 때문에 누구인가로부터 핀잔을 듣는 등 문제가 ..
2014.02.16 -
욕먹는 아들
“영감들 때문에 직장에 다닐 맛이 안 나요!” 직장에 다니고 있는 아들이 얼마 전부터 이따금씩 화를 내면서 이렇게 투덜댔다. 내 또래의 몇몇 무식하고 천박한 거래처 사장들이 ‘이 새끼, 저 새끼’ 욕을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그 말을 들으니 어찌나 속이 상하든지. ‘이놈들은 자식도 없나? 남의 귀한 아들에게 왜 함부로 욕지거리야?’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머리에 원형탈모까지 생긴 것을 알게 되자 나 역시 잔뜩 화가 났다. ‘도대체 이놈들이 젊은 애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기에 원형탈모까지 생긴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들의 직장생활을 대신해줄 수도 없고. 그래서 며칠 뒤, 또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아들에게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내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욕을 듣게 되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
2014.02.15 -
마음의 모양
고등학생 때의 어느 날, 우연히 집의 한구석에 있던 관상에 관한 책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관상공부에 빠져 지낸 적이 있었다. 더구나 ‘이런 특징이 있는 사람은 바람둥이다’ 등으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이 매우 많이 있다 보니 더욱. 그리고 이를 계기로 사주에 대한 공부도 하게 되었는데, 관상에 관한 책과 사주에 관한 책의 맨 마지막에는 모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었다. ‘모든 상(相) 중에서 최고는 심상(心相)이다’ ‘이 말대로라면, 운명이란 사람의 마음먹은 대로 바뀐다는 말이 될 것인데, 이렇듯 얼마든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운명을 굳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는 그동안 공부는 않고 쓸데없는 짓만 잔뜩 했다는 생각에 어찌나 기운이 빠지든지.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사 마음먹기 ..
2014.02.14 -
취직걱정하는 부잣집 아들
아버지가 사업을 하는 까닭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란데다, 취업의 걱정도 없던 한 외동 청년이 있었다. 부모가 연로한 까닭에 취직보다는 아버지의 일을 한시라도 빨리 배워야했으니. 하지만 그는 대학을 졸업할 때쯤 되자 갑자기 취직을 해야겠다고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취직을 해야 할 듯싶습니다.” 7순이 넘었다는 아버지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건만,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을 생각은 않고 왜 갑자기 어려운 취직을 하겠다고 말하는지. 그렇다고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서. ‘혹시, 이 젊은이의 부모님이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선언이라도 했나? 아니면, 취직을 강력히 요구하는 누구인가에 의해 억지로 저렇게 생각하게 됐나?’ 그래서 그 이유를..
2014.02.13 -
외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얼마 전, 30대 초반의 한 청년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외할머니가 위독하시데요. 저를 끔찍이도 아껴주셨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해요?” 그로부터 며칠 뒤, 그 청년은 다시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결국 자신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제가 가족 중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오직 외할머니뿐이었는데, 이제는 도대체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할까요?” 그런데 그 청년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안타깝다는 생각보다는 왠지 자꾸만 거북한 감정이 느껴졌다. ‘얘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까지 외할머니한테 기생해서 살 생각만 하는 거야?’ 그래서 결국 한마디 하고 말았다. “그래서야 외할머니가 마음 편히 떠나실 수 있겠어? ‘이제부터 저도 외할머니..
2014.01.06 -
영웅호걸의 실체
‘삼국지’의 관우나 장비, ‘수호지’의 송강, 무송, ‘초한지’의 항우, 한신 등. 중국의 고전 역사소설에는 흔히 영웅호걸이라고 부르는 장수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영웅호걸들은 성격도 매우 호탕하며 대범한데다, 용맹해서 싸움도 잘하고 술과 여자까지 좋아했다는데, 이 때문인지 아직도 수많은 남자들이 부러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장수들 역시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을까? 먼저, 이 영웅호걸들은 싸움터에 나서면 나라를 위하여, 승리하기 위하여 칼이나 창 등의 무기로 적을 아주 잔인하게 죽여야 했으며,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적의 팔이나 다리를 잘라 더 이상 도전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즉, 이 장수들은 싸움에 나서면 ‘이번에 내가 죽거나 다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긴장감에 늘 시달려..
201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