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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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성과 특수성
어릴 때부터 나 스스로를 변호하는 습관이 몸에 밴 까닭에 초등학교 때까지 나는 말을 논리정연하게 참 잘했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나중에 변호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실 정도였으니.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몇 가지 이유로 말하는 데 점점 게을러지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정리되지 않은 나 혼자만의 생각을 그저 내키는 대로 말할 때가 점점 늘어났다. 충분한 부연설명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없게 말을 하거나 말하던 도중 갑자기 그만두는 등으로. ‘말한다고 알아듣겠어?’ 생각하면서. 혹은,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겠지’ 생각하면서. 그렇다보니 주변사람들에게 엉뚱한 오해를 받을 때가 자꾸 늘어났는데, 이 때문에 좀처럼 내 생각을 말하지 않는 습관이 더욱 몸에 배게 되었다. 마침 그때 ‘책상은 책상이다’..
2014.04.08 -
책상은 책상이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친 뒤 친구와 수다를 떨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서점에 진열돼있던 책 한 권의 제목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책상은 책상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냥 무시하고 말았다. ‘당연히 책상은 책상이지. 당연한 걸 왜 이상하다는 듯 써놔?’ 그러고는 그냥 지나치려는데 문득 점심시간이면 늘 책상 위에 꺼내놓은 도시락을 먹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지, 책상은 밥상이 될 수도 있지. 또, 작업대가 될 수도 있잖아. 그런데도 왜 책상은 책상으로만 사용해야한다는 듯 써놨지?’ 그렇게 그 제목만 갖고 생각을 이어가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래, 책상은 작업대라고 말할 수도 있고, 밥상이라고 말할 수도 ..
2014.04.08 -
다시 겪은 시행착오
‘나로 푯말이 되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도 알게 된 뒤, 한동안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나의 기원(基源)에게 이같이 간구했었다. 새벽으로, 밤으로.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내 주제에 어떻게 푯말이 될 수 있을까?’ 생각되었다. ‘겨우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그런 어느 날인가, 나보다 5살 많은 한 선배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한마디 들었다. “너는 아직 세상을 몰라” 그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사람공부를 해온 나에게 아직 세상을 모른다니. ‘나를, 그동안 내가 했던 고생을 도대체 뭐로 보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보다 5년이나 더 산 사람의 말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는데, 그 뒤 며칠 안 되어 결국 나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2014.04.07 -
나만의 것을 찾아서
무턱대고 ‘나만의 것’을 찾아 헤매던 시절.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다보니 처음에는 어디에서인가 주워들은 대로 때로는 벽에 점을 하나 찍어놓고 한참이나 노려보는 등 면벽참선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내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듣겠다면서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한 자루 낀 채 멍하니 눈을 감고 있기도 했다.(한참 뒤에야 이렇게 하는 것이 ‘기 운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어느 날, 우연히 이해를 위한 분석을 시작했던 나는 함께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이 세상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때부터는 점점 하루하루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새로울 만큼 계속해서 점점 더 많은 사..
2014.04.07 -
또 천덕꾸러기가 되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들락거리던 고등학교 3학년 초의 어느 날. 바로 뒤에 앉아있던 한 아이가 내 등을 쿡쿡 찌르더니 잔뜩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너, 꾀병이지? 진짜 아프면 진단서 뗘와.” 담임선생님께 이미 양해를 구하고 병원에 다니고 있건만, 웬 황당한 소리인지. ‘내가 아프다는 것을 너한테 증명해줘야 하는 이유가 뭔데?’ 말 같지도 않아서 그냥 무시하고 말았는데, 그의 말을 시작으로 괜히 시비를 거는 등 같은 반이던 몇몇 아이들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아픈 사람 위로를 해주기는커녕 왜 이래?’ 하지만 처음에는 그냥 잠자코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로 피해를 주는 것 같았던 데다가, 아픈 나를 대신해서 체육수업 등에 참가하는 등 실제로 피해를 줬던 아이도 여러 명이 ..
2014.04.06 -
글쟁이가 되기 위해
글쟁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뒤, 나는 다시 어떤 종류의 글을 쓸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그때까지 내가 가끔 썼던 글은 오직 시였건만, 어릴 때부터 시인은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었기에. 그렇게 며칠을 생각한 끝에 결국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때부터 또다시 여러 날을 어떤 종류의 소설을 쓸 것인지 생각했다. ‘순수소설? 추리소설? 아니면, 상업소설?’ 더구나 그때까지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섣불리 아무 소설이나 마구 썼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글을 쓰려면 먼저 글을 통해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글의 주제라고 말하는. 그래서 이때부터 ‘나는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
201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