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독서

2011. 8. 19. 23:33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어떤 책을 읽어야 ‘나’를 찾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책을 통하여 ‘나’를 찾겠다고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전에 괴테처럼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데, 그래도 그렇게 하겠습니까?

Q : 괴테가 왜요?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괴테가 약 50년에 걸쳐서 썼던 ‘파우스트’의 서문에다 “이제까지 동서양의 온갖 책들을 읽었지만, 결국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푸념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책 속에서 ‘나’를 찾아내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Q : 그렇겠죠.

또, 그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는 오랜 세월동안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있고요. 그런데도 굳이 그런 노력을 하고 싶어요?

Q : 그래도 흔히들, ‘책 속에 길이 있다’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 말이야 책의, 또, 글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조차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자기의 마음대로 휘두를 목적으로 떠들어대는 것이죠. 또, 누구인가의 그럴듯한 말에 잔뜩 휘둘려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책의 기본적인 성격을 알고 있다면 결코 쉽게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Q : 푯말님은 참 생각이 독특하신 분 같아요.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죠?

사람은 자기의 생각을 가장먼저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소리나 그림, 혹은, 글 등의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즉, 책을 읽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Q : 그 책을 쓴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죠.

맞습니다. 많은 책을 읽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고요. 만약, 어떤 한 사람의 생각을 아주 자세하게 알게 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정작 자신의 생각은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만 잔뜩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Q : 글쎄요? 그것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요.

내 머릿속에는 내 생각, 즉, 나에게 어울리는 생각이 들어차지 않고, 온통 다른 사람들의 생각만 들어차게 됩니다. 그렇다보니 마치 로봇처럼, 그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서 말하고 행동하게 되죠. 사대주의자로 일평생을 살았던 조선시대의 수많은 유학자들과 유학자 출신의 관리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Q :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요? 좋은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한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맺을 수도 있잖아요?

처음에, ‘책을 통하여 나를 찾고 싶다’ 말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나는 ‘자신의 생각도 모르면서, 남의 생각만 잔뜩 알아서 뭐하겠느냐?’라는 의미로 말한 것인데.

아무튼, 금방 하신 말처럼만 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만 잔뜩 아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쉽게 그렇게 될 것 같습니까?

Q :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크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은데요.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책 속에 길이 있다’, ‘책 속에 진리가 있다’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글을, 책을 쓰는 사람들 중에도 나쁜 사람은 많답니다. 그래서 그중에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지, 오직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이상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들도 많고,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정답을 말하듯 책을 쓰는 사람들도 많으며, 또, 처음부터 아예 누구인가를 속일 목적으로 엉뚱한 내용을 쓰는 사람들도 많죠.

Q : 그렇다는 것은 저도 조금은 압니다.

특히, 사람들이 즐겨 읽는 각종 인문학 책을 쓰는 저자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더구나 그런 사람들은 다들 자기의 종교적 권위나, 학문적 권위, 혹은, 전문적 권위를 이용하여 그런 글들을 씁니다. 또, 오직 책을 팔아먹을 목적으로 매우 질 낮은 작자를 대단한 인물이라는 듯 홍보하는 출판사들도 적지 않죠.

그러니 어떤 사람이 그런 이상한 글을, 책을 쓰는지 정확히 알아볼 수 있겠어요?

Q : 물론, 쉽지 않겠죠.

그저 쉽지 않은 정도인 것 같아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책을 통하여 나를 찾겠다’ 말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책의 기본적인 성질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한다’라고 말한 이 푯말이가 독특하다고,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만 생각할래요?

Q : 음.

조심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나’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책을 미처 알아보기도 전에, 아니, 그런 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엉뚱한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서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주 이상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몇 천 배, 몇 만 배 더 높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위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책을 통하여 ‘나’를 찾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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