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하는 사람들

2011. 8. 19. 23:28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그동안 제대로 앞뒤를 돌아보지도 못한 채, 그저 세상살이에만 바빴는데, 저는 이제까지의 삶에서 벗어나서 성직자가 되려고 합니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매우 힘든 결정을 하셨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물어도 될까요? 언짢으시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Q : ‘나’를 찾기 위해서죠. 오랫동안 망설여왔는데, 이제야 겨우 결정했네요.

아, ‘나’를 찾으려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죠. 어떤 사람들은 ‘나를 찾으려고’ 취직한다고 하며, 어떤 사람들은 ‘나를 찾으려고’ 외국까지 간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나를 찾으러’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나를 찾으려고’ 모델을 뽑는 대회에 나왔다고 무척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줌마도 있었죠. 그밖에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무척 많이 있고요.

Q : 그런가요? 그럼 저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보시나요?

왜요? 자신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요? 하지만 목적지가 다른 것만 빼면 조금도 차이가 없잖아요? 한 마디로 말해서, 그저 포장지만 다를 뿐, 내용물은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달리 보일 수 있겠어요?

Q : 남들이 보기에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그렇죠. 보는 사람 마음이니까요. 아무튼 처음에 그런 말을 들었을 때에는 참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나는 늘 여기에 있건만,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로 자신을 찾으러 간다는 말일까?’ 그렇게 한참 생각했었죠. ‘혹시, 이 사람은 복제인간이라 자기의 원판을 찾으러 간다는 말일까?’ 등의, 말도 되지 않는 생각들도 해봤고요.

Q : 그런데요? 그래서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나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이 도피욕구가 시달린다는 것을, 즉, 집에는 있기 싫어하고, 그저 밖으로 쏘다니기 좋아하는 마음의 병에 걸렸다는 것을 그렇게 고상하게 표현하더군요. 그렇게 말하면 좀 멋있어 보이는지?

Q : 그럼 내가 그런 마음의 병에 걸렸다는 말씀인가요?

사람이란 누구든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에서 머물려고 합니다. 그런데 흔히, ‘집이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다’ 말하니, 사람들은 집에서 머물려고 하겠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나름대로의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 보니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게 있죠. 과연 이런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Q : 집에서 나와 어디로인가 나가겠죠.

그렇죠. 그래서 그저 길거리를 쏘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산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으며, 또, 낚시터 등의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장소를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성직자가 되겠다는 이유 등으로 영원히 가출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Q : 그런데요?

이런 것을 ‘도피욕구가 있다’ 말하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나를 찾으러’라고 말하며 아예 집을 나와서 종교단체로 가는 사람들도 여럿 있죠. 혹시 자신도 그런 사람들에 해당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까?

Q : 지금 하신 말씀이 전혀 틀렸다고 말할 자신은 없군요. 하지만 큰 뜻을 이루기 위하여 집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답니다.

‘나’를 아는 것이, ‘나’를 찾는 것이 큰 뜻을 이루는 것인가요? 과연 그런 말이 ‘나’를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이 푯말이에게 통할 것 같습니까? 무엇인가 오해를 하시는데, ‘나’란 그렇게 쏘다니면서 알고,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헛갈리지 않게, ‘나는 도피욕구 때문에 떠난다’ 말하시죠.

Q : 아집이 참 강한 분이군요. 자의적 해석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나요? 과연, 자신의 생각이 정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질문은 저한테 하실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를 찾으러’ 집을 떠난다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시나보군요? 왜 굳이 성직자가 되면서까지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그렇게 자신에게 무관심해서야 어떻게 ‘나’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Q : 음.

어떤 경전에 ‘나’를 찾는 방법이 적혀있던가요? 혹은, 누구인가 ‘성직자가 되면 명확하게 나를 찾을 수 있다’ 말하던가요? 같은 종교의 성직자이지만, ‘나’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달리 하는 사람들도 여럿이던데, 그런 차이는 어떻게 극복하려고요?

성직자마다 ‘나’에 대한 해석이 다른 모순은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이 그 말이다’ 말하지만, 과연 그 말이 그 말 같습니까?

Q : ‘나’를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야 물론 그렇죠. 그러나 미처 ‘나’를 알기도 전에 그런 말장난에 휩쓸려 전혀 엉뚱한 곳으로 떠밀려가지는 않을까요? 과연,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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