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싶습니까?

2011. 8. 21. 10:33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푯말님은 '진정한 자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그렇다면 먼저 그런 생각부터 과감하게 버려야합니다.

그러나 그 반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결코 자유롭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

Q : 무슨 말씀인가요?

우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은 곧, 무엇인가에, 혹은, 누구인가에게 그만큼 억눌려있다는 말이나, 또, 앞으로 무엇인가에, 혹은, 누구인가에게 억눌리고 싶지 않다는 의미의 말이 되겠죠? 이미 한껏 자유롭게 살고 있는 사람이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Q : 그런데요?

하지만 자유를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즉, 자신이 무엇인가에게, 혹은, 누구인가에게 억눌려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수두룩합니다. 그리고 비록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도, 정확히 무엇에, 혹은, 누구에게 억눌려있는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또 아주 수두룩하죠.

그래서야 그 바라는 대로 이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Q : 음.

그런 형편의 사람들이 또 툭하면 ‘자유란 무엇이다’, ‘자유란 이렇다’ 말하죠.

그중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자유를 찾아서 달리는 사람들도 있고, 음악 속에 숨은 자유를 미친 듯 찾는 사람들도 있고, 또, 자유를 찾아 춤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는 등, 매우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데, 심지어 자유를 잦아 마약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죠. 그렇다면 과연,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일까요?

Q : 무작정 자유를 찾아 헤매기보다는, 자기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먼저 생각해보라는 말씀인가요?

‘자유란 이런 것이다’ 정의하면 그에 갇히게 되는 까닭에, 사람은 그만큼 더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무엇인가의, 또, 누구인가의 억누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유를 찾는 것인데, 그렇게 되어서야 어떻게 ‘나는 자유롭다’ 말할 수 있겠어요?

Q : 어렵군요.

물이 자연스럽게, 또, 자유롭게 흘러가듯이, 기본적으로 사람이란 자연스럽게, 또, 자유롭게 변합니다. 그렇다보니 그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을 잃는다면 사람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데, 따라서 그런 정의로 자신을 그렇게 만들지 말아요.

Q : 그렇다면 자유에 대하여 정의하는 것도 사람이 본래 갖고 있던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을 잃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물이 미리 그 방향을 정하고 흐르던가요? 자기의 갈 길을 먼저 정의하던가요? 평소에는 이렇게 흘렀지만, 경우에 따라서 아예 흘러가지 않거나, 혹은, 전혀 다른 길로도 흐릅니다. 그렇게 된다고 물이 아니던가요? 물은 물이죠.

Q :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찾는 자유라는 것이 제가 원래 갖고 있던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을 찾는 것이라는 말도 되는 것 같은데, 맞나요?

맞습니다. 물은 어떤 경우에도 물이듯이, 사람으로서의 본성은 결코 잃지 않고 자연스럽게, 또, 자유롭게 변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찾는 진정한 자유이죠.

Q : 그럼 어떻게 해야 제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비록 똥통 안에 들어가 있어도 물은 계속해서 물이듯이, 실제로 사람의 본성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굳이 그 본성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는 없고, 오직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만 되찾으면 될 것인데, 그렇게 되려면 당연히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또, 모든 사람들에서 자유로워져야겠죠?

Q : 무슨 말씀인지 대충 알겠지만, 사람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혼자만 산다고 해도 무엇인가에 또 억눌릴 것 같은데요.

건강한 사람은 그만큼 병에 걸리지 않듯이, 억누름을 감당하는 힘만 키우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으니, 이제부터는 그 모든 억누름을 감당하는 힘을 키우십시오. 그 힘이 커지는 만큼 본래의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을 되찾을 것입니다.

Q : 억누름을 감당하는 힘이라. 그건 또 어떻게 키우죠? 돈을 많이 벌어야하나요? 아니면, 이제부터 열심히 노력하여 싸움실력을 키울까요?

돈이나 훌륭한 싸움실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억누름이 몇 가지나 될까요? 또,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예 등으로 감당할 수 있는 억누름은 몇 가지나 되겠어요?

더구나 그런 힘들은 매우 수준이 낮기 때문에, 가지려고 노력하다보면 더 많은 억누름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되죠.

Q : 그럼 어떤 힘을 키워야 제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정확한 정보죠.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의 말처럼, 자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자신을 억누르는 모든 것들에 대한, 또,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되면 그만큼 더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푯말의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개의 ‘나’  (0) 2011.08.21
대인관계가 어렵습니까?  (0) 2011.08.21
자신감이 없습니다  (1) 2011.08.20
‘나’를 바꾸고 싶은데…  (0) 2011.08.20
나를 사랑하고 싶은데…  (0) 2011.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