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고 싶은데…

2011. 8. 20. 13:16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제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이제까지는 어떻게 노력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세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뿐입니다.

Q : 그래요?

그렇습니다.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다보면 자신에 대한 온갖, 정확한 정보들을 그만큼 더 많이 알게 되는데, 이렇게 될수록 사람은 그만큼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되죠. 그래서 정확한 정보란 사랑의 근거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요.

Q :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각종 동물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을 생각해봐요. 다른 사람들은 무섭다고, 징그럽다고, 혹은, 이상하게 생겼다고 외면하는 동물들도 그런 사람들은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말하잖아요. 그렇다보니 그중에는 심지어 가족까지 팽개치고, 자기가 연구하는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고요.

Q : 그런데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독사나 사자 등의 매우 위험한 동물들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연구를 계속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던데, 단지 연구가 목적이라면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연구하겠어요? 그 말대로, 자기들이 연구하는 동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니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죠.

Q : 음.

물론, 오랫동안 연구하다보니 정이 들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정이 들었다고 해도, 연구하는 독사에게 물리는 등, 죽을 위기를 한두 번 맞으면 계속해서 연구하기는 쉽지 않죠. 무서워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Q : 그럼 처음 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하실래요?

심리학자들이나 정신분석학자들도 모르는 것까지 알고 싶은가요? 더구나 그런 것을 알게 된다고 해서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사람은 눈을 통하여 가장 많은 정보를 알게 됩니다. 그렇다보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인데, 하지만 그런 정보들 중에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워낙 많다보니, 비록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어도 오랫동안 사랑을 지속하는 사람은 매우 적은 것이죠.

Q : 막상 사귀면서 진짜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되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지만, 계속해서 싸울 수도 있는 것이고요.

Q : 그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이유도 같다고 생각하세요?

오직 낳았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까? 오랫동안 키우면서 자식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계속해서 알게 되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무섭다’ 말하는 것이고요.

Q : 자식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도 ‘사랑한다’ 말하는 부모들도 매우 많잖아요?

과연, 그런 부모들이 자식에 대하여 제대로 알면 쉽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의 딸이 원조교제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계속해서 ‘사랑한다’ 말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또, 부모가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역시 그렇게 말할 부모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Q : 음.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다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나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어렵죠. 그렇다보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너무 많이 아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고요.

Q : 그런데도 왜 ‘나’에 대하여 많이 알수록 그만큼 더 사랑하게 된다고 하시나요?

이론적으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은가요? 이미 말했듯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닌데요. 그러니 그렇게 호기심을 갖기보다는 이제부터 자신을 알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훨씬 현명할 것 같은데요.

Q : 그래도 좀 알고 싶군요.

우선,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 연구하는 동물을 사랑했을까요?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 등에 연구를 시작했겠지만, 그것들을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비록 처음에는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누구인가에 대하여 알게 되면서 점점 더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이 있고요.

Q :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경우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면 무턱대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힘듭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혐오감만 자꾸만 커질 수도 있고요. 그러니 진정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면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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