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我)’를 안다는 것은

2011. 8. 15. 20:14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가끔씩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도대체 자신의 무엇을 알고 싶다는 말인가요?

그렇게 말하는 이유야 다 다르겠죠?

그런데 ‘나’를 알기 위하여 노력하다보면 결국, 자신이 이 세상에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며,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게 됩니다.

그러니 비록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존재목적이나 존재가치를 알기 위하여, 또, 삶의 방향을 정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 그래요? 하지만 굳이 그런 것들을 알 필요가 있을까요? 자신의 존재목적이나 존재가치를 모른다고 해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이 있잖아요? 또, 삶의 방향을 정하지 않았어도, 자기의 꿈을 실현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매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말을 하는군요. 아무튼, 먼저 질문을 하나 할게요.

어떤 사람이 기간이나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디로인가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고 하면, 과연 그 사람은 만족한 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Q : 글쎄요? 만족한 여행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를 안다는 것은 매우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이 세상에서의 삶이라는 긴 여행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건물을 짓기에 앞서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 전에 구상을 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죠. 물로, 그밖에도 매우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고요.

Q : 음.

그렇다면 설계도가 없는데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요?

Q : 그런데요?

개집 정도는 지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형편이라면 사람이, 즉, 자신이 살 수 있는 집은 지을 수 없답니다. 또, 겨우 지었다고 해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시행착오를 계속해서 겪게 되는데, 설계도가 없는 삶은 과연 어떨까요?

Q :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한다는 말씀인가요?

아뇨. 그야 각 사람이 알아서 할 바니 내가 이래라 저래라 말할 필요는 없죠. 또,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조금 전에 ‘굳이 자신의 존재목적을 알아야하고,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하냐?’ 묻기에 대답한 것일 뿐인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군요.

Q : 그런데 삶의 계획을 아무리 잘 세운다고 해도, 반드시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또, 기껏 짜놓은 계획을 실천하기도 전에 아예 죽을 수도 있고요.

맞아요. 이 세상에서의 삶에는 워낙 많은 변수가 있다 보니 사람이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되는대로 살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 같아요? 또, 그런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다면 마냥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Q : 물론, 쉽지는 않겠죠.

겨우 그 정도뿐일 것 같아요? 요즘, 가정폭력 때문에 온가족이 고통 받는 등, 이런저런 문제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정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그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삶의 설계도를 그리지 않은 까닭에 자신도 살아갈 수 없는 집을 지어놓은 까닭입니다. 그런 집에서 배우자와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그 형편에 자식까지 낳아서 키우다보니 더욱 가족 모두가 몹시 힘들게 된 것이죠.

Q : 그럼 그냥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보죠, 뭐.

그렇게 될 것 같나요? 그런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자신을 알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다면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그만큼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모두들 그저 ‘내가 왜 사는지 알게 된다고 해서 실제로 달라질 것이 뭐가 있겠느냐? 대꾸할 뿐, 전혀 듣지 않죠.

Q : 하긴, 제가 생각해도 그렇게 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네요.

과연 그럴까요?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자신을 안 뒤에도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 같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아니, 본격적으로 자신을 알기 시작하면 곧 더 이상은 그렇게 하지 않죠. 술이나 마약, 혹은,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그렇게 되어도 계속해서 그 가족 모두가 불행하게 살아갈까요?

Q : 음.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못 알아들은 채 그렇게 대꾸했던 이유는, 내가 했던 말이 터무니없이 들렸던 까닭이 아니라, 그만큼 자신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 그동안 만나봤던, 자신의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자신을 알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 말을 알아들었으며, 그중에서 또 일부의 사람들은 내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아무소리 없이 떠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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