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我)’는 없건만

2011. 8. 15. 23:04푯말의 대화

‘모든 것은 공(空)이니 본래 나(我)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Q : 본래 ‘나’란 없건만, 푯말님은 어떻게 ‘나’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말하나요? 어떻게 없는 ‘나’를 알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없는 ‘나’를 아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어요? 도대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본래의 나’가 없다고 생각하나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본래의 모습을 찾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요?

또, 다행스럽게도 내가 그 방법을 알고 있기에 말해주는 것인데,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이죠?

배고프다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음식을 나누어주는 것이 그렇게 잘못되었나요?

Q :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나보군요. 어떻게 있지도 않은 ‘나’를 알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달콤한 말로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유가 뭐에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한테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보다, ‘나를 찾고 싶다’ 말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본래 나는 없다. 그러니 찾지 마라. 헛수고를 할 뿐이다’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같은데요.

Q : 푯말님 같이 속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순진한 사람들이 올바른 길로 못가고 엉뚱한 길로 가는 것 아닙니까? 제발 좀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어허, 이런.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면서도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다니.

그건 그렇다 치고, 혹시 이제까지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해본 적은 있습니까?

Q : 당연하죠. 나도 오랫동안 그런 노력을 해봤으니 본래 ‘나’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푯말님의 모순을 지적하는 거죠.

‘나’를 알아가는 과정 전체는 크게, 본격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 그 준비과정으로 나눌 수 있죠.

이 준비과정을 마치면 자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깨닫게 되며, 그래서 본격적으로 ‘나’를 알아가기 시작하건만, 오랫동안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본래 나는 없다’ 말하다니.

Q :준비과정은 뭐고, 또, 본 과정은 뭐요? 또 무슨 말로 사람을 미혹하려는 거요?

물론, 그 전체의 과정을 준비과정과 본 과정으로 나눈 것은 나지만, 그렇다고 이제까지 전혀 없던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아무튼, 성직자들이나 종교인들 중에는 그렇게 ‘본래 나는 없다’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던데, 혹시 누구인가에게 배운 것을, 혹은, 어디에서인가 주워들은 것을 마치 스스로 깨우쳤다는 듯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Q : 푯말님이야말로 어디서 배운 것으로 그렇게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 아닌가요?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는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여러 가지 있답니다.

그래서 그것들만 사용하면 누가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했는지, 또, 그렇게 해서 얼마나 자신을 알게 되었는지 모두 알 수 있는데, 그렇다보니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답니다. 즉, ‘나’를 아는 데에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Q : 그러니까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하지 마시고, 이제부터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와는 달리, 이 세상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그러다보면 머지않아서 자신이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아주 명확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Q : 왜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말만 하죠?

엉뚱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알기 위하여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유하는 내용들 중에서 하나를 말한 것인데요. 아직까지 그에 대한 사유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본래 나는 없다’ 말하는 듯싶어 말한 것이고요.

오랫동안 ‘나’를 알기 위하여 노력했다는 사람이 겨우 그 정도의 말도 못 알아듣나요?

Q : ‘나’를 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건만, 어떻게 그렇게 자기의 말만 할 수 있죠? 어떻게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할 수 있나요?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한 것인데, 왜 갑자기 방법론을 이야기하나요?

도대체 이 세상에 어떤 것이 있는지, 또는, 어떤 것이 없는지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고야 어떻게 ‘나’가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겠어요? 또, 자기만의 방법대로 해서 깨달은 것이 ‘참’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충분하게 검증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하지는 않고 무조건 목소리를 높여 ‘본래 나는 없다’ 말하면 되겠어요?

Q :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으신 모양인데, 나도 이리저리 다 따져보고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푯말님이나 똑바로 하세요.

그래요? 그러면 우리는 같은 여행을 했지만, 전혀 다른 곳에 도착했나보군요.

아무튼,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하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어차피 말린다고 해서 듣지도 않을 테니. 하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보나마나 여러 가지 모순에 끊임없이 부딪칠 것이고, 그만큼 삶이 피곤해질 것이니,

이번 기회에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사유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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