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철학

2011. 8. 20. 00:46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철학을 공부하지만,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각기 다르다
Q : 저는 ‘나’를 알고 싶고, 또, 찾고 싶어서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과 철학이 어떤 연관이 있기에 그런 결정을 했나요? 혹은, 누구인가 철학을 공부하면 자신을 아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던가요?

Q : 왜 그런 질문을 하시죠? 혹시, 철학과 ‘나’를 아는 것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노자 등등, 철학자로 알려진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으니 무턱대고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죠.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철학자들 중에는 자신을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분명히 여럿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연관이 있다고도 말할 수 없고요.

Q : 그럼 철학을 공부하면 자신을 아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되잖아요? 저도 그런 생각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인데요.

어떻게 ‘나’를 알기 위하여 노력하는가에 따라서 그 목적을 이룰 수도 있고, 또, 헛고생만 잔뜩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서양의 근세철학은 후배 철학자들이 그 선배 철학자들을 비판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철학을 배운다는 사람들은 데카르트 등의 선배 철학자들을 비판하고 있고요.

‘나’를 알기 위하여 노력하기도 바쁜데,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비판이나 하고 있어서야 언제나 ‘나’를 알 수 있겠어요? 아니, 과연 그렇게 될 가능성이나 있을까요?

Q : 아무래도 철학적 비판과 남을 욕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군요.

철학적 비판은 ‘내 머리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무조건 깔아뭉개자’, 또, ‘나와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른 사람은 무조건 깔아뭉개자’ 등의 생각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런 것이 아무런 까닭 없이 남을 욕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오해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닌 듯싶은데요.

Q : 모르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철학적 비판이란 논리적 검증을 통하여 모순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을 말합니다. 뭘 좀 알고 말씀하시죠.

철학과 교수들이 순진한 학생들에게,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무조건 미친 싸움개처럼 물어뜯게 가르친다고 철학 등을 배운다는 대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던데요. 나 역시 각종 인문학을 배운다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했다가 엄청나게 물어 뜯겼고요.

Q :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자기의 경험만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전체를 판단하시면 안 되죠. 또, 철학을 비판해도 안 되고요.

자꾸만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은 듯한데, 그런 방식으로 공부하는 철학 등의 인문학을 통해서는 결코 ‘나’를 알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나’를 알기 위하여 노력해야하는 시간에 남의 모순된 부분에만 온통 관심을 가져서야 어떻게 그 목적을 이룰 수 있겠어요?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Q : 그렇다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도 없잖아요?

서울에 사는 어떤 사람이 부산을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자기의 길을 가기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욕하고 헐뜯는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과연, 그 사람이 부산에 제대로 갈 수 있을까요? 혹시, 누구인가와 괜한 싸움을 하게 된 까닭에 부산 근방에도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Q : 철학적 비판을 하는 과정이 바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죠.

과연 그런 듯싶습니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철학을 통하여 자신을 알게 되었던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는 말을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있나요? 혹은, 누구인가 ‘철학을 통하여 얼마든지 나를 알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있나요? 전혀 그런 말은 들어보지도 못한 채, 막연하게 자신을 알고 싶어서 철학을 배우고 있다면 자신에 대한 매우 무책임한 선택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죠?

Q : 그럼 푯말님은 무슨 근거로 철학을 통해서는 자신을 알 수 없다고 하시나요?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요. 나는 그저 유럽의 근세철학이 변해온 방식, 즉, 논리적, 철학적 비판을 통해서는 결코 자신을 알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인데요. 또, 그렇게 말한 이유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예를 들어서 이미 설명했고요.

Q : 그렇다면 제가 철학을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할 필요는 없잖아요?

내 말을 자꾸만 오해하시는데, 현재 철학 등의 인문학교육이 이루어지는 것과 ‘나’를 찾는 것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기에 ‘철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자신을 알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뜻으로 계속해서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Q : 그러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교수나 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그 근거야 엄청나게 많죠. 몇 십 년이나 철학을 비롯한 각종 인문학을 공부했으면서도,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아주 빠삭하게 아는 반면,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초등학생만큼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허다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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