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으려면

2011. 8. 20. 00:59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나’를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나’를 찾고 싶다면 우선 ‘나’를 알기 위하여 노력해야죠. 황금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황금이 바로 코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먼저 ‘나’를 알지 못한다면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며, 그래서 아예 찾을 수도 없거든요.

Q : 그렇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제 자신은 모르겠더군요.

누구나 다 그렇지만, 먼저 ‘어떻게 하면 나를 알 수 있을까?’ 생각하지는 않고, 즉, ‘나’를 알려는 대략적인 계획도 없이, 마구잡이로 자신을 알겠다고 덤비다보니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죠. 그렇다보니 곧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는데, 이미 말했듯이, 처음에 누구나 겪는 과정일 뿐, 결코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답니다.

Q : 그래요? 그럼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생각한 뒤, 그냥 참고 넘어가야 하나요?

분명히 금방, ‘먼저 어떻게 하면 나를 알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한다’ 말했는데.

아무튼,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질문부터 하나 하겠습니다. 만약, 갑자기 개구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Q : 개구리를 관찰하든지, 개구리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되어있는 책을 읽어보겠죠. 하지만 당장 개구리를 구할 수는 없으니, 저라면 아마 책부터 찾아볼 것 같군요.

맞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순서겠죠. 그런데 ‘나’를 알기 위해서도 그와 같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되어있는 책을 읽어보든지, ‘나’를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하지만 ‘나’에 대하여 설명된 책은 있는지조차 모르니 ‘나’를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겠죠? 따라서 개구리를 알기 위해서는 개구리를 관찰하듯이, ‘나’를 알고 싶다면 먼저 ‘나’를 관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Q : ‘나’를 알고 싶다면 먼저 ‘나’를 관찰해라. 네, 그럼 결국 ‘나’를 찾기 위해서도 먼저 ‘나’를 관찰해야겠군요?

그렇죠. 그래서 ‘나’를 관찰하는 만큼 ‘나’를 알게 되며, 또, 그만큼 ‘나’를 찾게 된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데, 이렇게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짧게 줄여서 ‘자기관찰’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결국 ‘자기관찰을 계속하면 그만큼 자신을 알게 된다’, 혹은, ‘자기관찰을 계속하면 나를 찾게 된다.’라고 정리할 수 있죠.

Q :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저는, 지금 말씀하신 자기관찰을 해야겠군요?

당연하죠. ‘나’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기관찰뿐이니,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생각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자기관찰을 시작해야죠.

Q : 그런데 ‘자기관찰’이라는 말은 참 낯설군요. 혹시, 푯말님이 새로 만들었나요?

‘나’를 알아가는 과정 전체는 크게, 그 준비과정과 본격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중에서 본격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바로 ‘자기관찰’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 이르기도 전에 죽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그렇다보니 익숙하지 않은 것이죠.

Q : 그렇구나.

그래도 자기관찰을 하는 행위는 아주 익숙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도 실제로는 자기관찰의 한가지이거든요.

Q : 그래요?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자신을 관찰하겠다는 생각으로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사람은 매우 적을 수도 있지만, 그런 행위가 자기관찰의 한가지인 것은 분명하죠. 또, 자신의 사진을 보는 것도 자기관찰의 한가지이고요. 그밖에도 매우 많습니다.

Q : 네에.

그리고 이제까지 이 세상에 살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는 누구인가?’ 등의 생각을 했고, 그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자기관찰을 했죠. 따라서 자기관찰이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요. 그러니 굳이 새롭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요.

Q : 음, 그러면 이제까지 자신이 자기관찰을 한다고 말했던 사람도 있나요? 물론, 푯말님이나 푯말님께 배운 사람들은 제외하고요.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그것까지야 알 수 없죠. 하지만 비록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관찰을 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정확할 듯싶군요.

Q :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혹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거울에 자신을 비추거나 사진을 보는 것을 자기관찰이라고 꿰어 맞추시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는군요. 자신이 그 의미조차 모르고 하는 행위를 자기관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관점의 차이가 아닌가 싶어요. 즉, 어떤 측면에서 그런 행위를 이해하는 가에 따라서 자기관찰이 될 수도 있고, 또, 무의미한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숨쉬기를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처럼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숨쉬기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잖아요? 사람이 거울을 보는 행위나 사진을 보는 행위 역시 그와 같다고 이해하면 훨씬 정확할 듯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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