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나’

2011. 8. 20. 00:53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저를 모르겠어요. 이것이 ‘나’인가 싶으면 아니고, 저것이 ‘나’인가 싶으면 또 아니고. 도대체 뭐가 제 참모습인지 모르겠더군요.

‘나’에 대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그저 자신을 분석해서 이해하려다보니 자꾸 그런 것인데,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나’를 알아가는 처음에는 누구나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니까요.

Q : 그럼 푯말님도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으셨나요?

당연하죠. 또,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겠다며 손가락 사이에 볼펜 한 자루 끼고 기운행이라고는 것도 해봤고, 어떤 단체에서 한다는 것처럼, 벽에 점 하나 찍어놓고 한참동안 째려보기도 했죠. 아무 것도 몰랐을 때는 별 짓을 다 했네요.

Q : 네에. 그런데 ‘나’에 대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람의 70%는 물이라고 하죠? 그래서인지 사람은 물의 성질이 매우 강합니다. 물이 담기는 그릇에 따라서 모양이 계속해서 변하듯이,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사람의 태도는 계속해서 변하고, 물이 잘 흐르다가 작은 장애물이라도 만나면 곧 그 흐름이 변하듯이, 사람도 어떤 자극을 받는가에 따라서 계속해서 변하니까요.

Q : ‘나’를 알기 위해서는 유연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한다는 말씀인가요?

자신의 변화를 기준으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이런 사람을 만나니 내가 이렇게 변하는구나’,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변하는구나’, 혹은, ‘이런 자극을 받으니 나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구나’ 등으로 말입니다.

Q : 음.

왜냐하면, 계속해서 흘러가는, 또, 어떤 모양의 그릇에도 들어갈 수 있는 물과 같이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까닭인데, 이런 사람의, ‘나’의 성질을 무시한 채, 그저 단편적으로만 ‘나는 이렇다’ 정의하니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있겠어요?

Q : 그러니까 제 자신의 변화를 기준으로 저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단편적으로만 이해하려한 까닭에 저를 제대로 모르게 되었다는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그뿐 아니라, 계속해서 그렇게 하다 보니 자신의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를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 생각하는 등, 매우 어색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다보니 ‘왜 나한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혹은, ‘왜 내가 이렇게 변했지?’ 생각하기보다는, 심지어 ‘이것도 내가 아니고, 저것도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등, 그저 현재의 자신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게 된 것이죠.

Q : 그러니까 경우에 따라서 잠시 바뀔 뿐, ‘나’는 원래 그대로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쓰레기나 똥과 섞인다고 해도 물의 기본적인 성질은 결코 변하지 않듯이,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상황이 되든지, 생김새나 키를 비롯한 ‘나’의 기본적인 신체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 대해서는 쉽게 알 수 있죠.

Q : 그렇다면 저의 기본적인 성질부터 알려고 해야겠군요?

당연하죠. 따라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란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기본적인 성질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그 성질조차 모르고 ‘나’를 정의하면 호리병 안에 담겨진 물을 보고 ‘저것이 물의 참모습이다’ 말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그러니 계속해서 오류가 나타날 수밖에 없죠.

Q : 네에.

그래서 진정으로 자신을 알고 싶다면 사람은, ‘나’는, 그저 꽝꽝 얼려진 얼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물과 같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한다고 말한 것이고요.

Q : 말씀을 들어보니, 그동안 제가 어떤 틀 안에다 제 자신을 너무 끼워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 등의 여러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그렇게 배우잖아요. ‘착하게 살아야 한다’, ‘성공해야한다’, 혹은,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한다’ 등으로 말입니다. 때로는 배운 대로 하지 않았다고 야단을 맞기도 하고.

Q : 그렇죠.

그뿐 아니라, 때로는 배운 대로 했다고 욕을 먹거나, 심지어 얻어맞기도 하죠.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가르치던 사람으로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엇이든지 열심히 해라’ 가르치던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또, ‘신용을 지켜야한다’ 가르치던 사람으로부터는 신용을 지켰다는 이유로, 등등.

Q : 음.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기본적인 성질은 잘 모르면서도, ‘보나마나 저 사람은 이런 경우에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라는 등으로, 다른 사람들의 기본적인 성질은 쉽게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Q : 아, 정말 그러네요. 그건 또 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자신을 관찰하는 것은 습관화되지 않은 반면,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역시 계속해서 그런 교육을 받으면서 습관화된 까닭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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