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관찰’의 선배들

2011. 8. 20. 01:08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과거에도 자신을 알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신 것 같은데, 맞나요?

그럼요.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들이라고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았겠어요? 지금까지 내가 확인한 사람들만 해도 적지 않으니,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까지 다 포함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런 노력을 했다고 이해해야 정확할 듯싶군요. 또, 기원전에도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했던 사람은 분명히 여러 명 있었고요.

Q : 그래요? 그런데 왜 그런 사람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아니요,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그중에는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들까지 적지 않게 있고요.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했던 사람’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철학자나 소설가 등의 다른 이유로 알려진 까닭에, 옛날에는 그런 사람은 한명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Q : 그런가요? 그럼 누가 그런 사람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철학자로 알려진 데카르트나 칸트가 바로 그런 사람이죠. 또, 노자나 소설가로 알려진 카프카 역시 마찬가지이고. 이미 말했듯이, 그밖에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Q : 그 사람들이 다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했던 사람들이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말할 증거는 없잖아요? 그 사람들이 ‘나는 자기관찰을 한다’ 말했던 것도 아니고.

설마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했다는 말들, 즉, 데카르트가 말했다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나, 칸트가 말했다는 ‘물자체(物自體), 또,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악법도 법이다’, ‘너 자신을 알라’ 등이 바로 그 근거가 되니, 그들이 자기관찰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죠.

Q : 어떻게 그런 말들이 근거가 된다고 말씀하시죠?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즉, 자기관찰의 과정에서 사람은 계속해서, 이제까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여러 사실들을 순서대로 하나하나 깨달아 알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인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나, ‘물자체’, 혹은, ‘악법도 법이다’ 등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 한 말을 보면 누가 자기관찰을 했으며, 얼마나 자신을 알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죠.

Q : 음.

이런 사실은 어느 정도 자기관찰을 한 사람들이라면 어지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물론 그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자기관찰을 한 범위까지만, 그래서 자신을 알게 된 범위까지만 이해할 수 있겠죠.

Q : 그런데 사람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모두 똑같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란 높은 산을 올라가는 것과 매우 비슷합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볼 때에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같은 높이에 이르면 모든 사람들이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되죠. ‘이만큼 올라오니 온대림은 다 사라지고 한대림만 있구나.’, ‘이만큼 올라오니 눈이 덮여있구나.’ 등으로 말입니다.

Q : 음.

이런 발견을 흔히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되니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똑같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겠죠.

Q : 그래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돼지’를 미국 사람들은 ‘pig’라고 부르고, 중국 사람들은 ‘豚’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비록 같은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고 해도 사람마다 표현의 차이가 조금씩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Q : 네에. 그렇다면 혹시, 누가 가장 높은 곳에 이르렀는지도, 즉, 누가 자기관찰을 가장 많이 하여 가장 자신을 잘 알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나요?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사람공부를 시작했지만, 모든 사람들을 다 살펴본 것은 아니니 누가 가장 높은 곳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는 우리나라의 소설가인 이외수 이상 가는 사람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는 이외수가 가장 자기관찰을 열심히 했다고 말해야겠군요.

Q : 노벨상도 받지 못한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하다고요?

이외수에게 노벨상이라니요? 박사가, 그것도 원로 박사가 기껏 중고등학생이나 받는 상을 받아야지 좋겠어요? 아무리 그 사람이 격식을 따지기 싫어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은 너무한 바램이네요. 차라리 개집에서 살라고 하지요?

그나저나 왜 누가 자기관찰을 가장 많이 했는지 물어봤나요?

Q : 그런 사람이 했던 말이나, 그런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보면 제 자신을 아는 데에 어떤 도움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물어본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안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했다가는 늙어 죽을 때까지 결코 그 신세진 사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거든요. 실제로 그런 형편의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고요. 그러니 그런 노력을 할 시간이 있다면 단 1초라도 아껴서 자기관찰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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