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은데…

2011. 8. 20. 13:11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저는 제가 싫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싫군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 자신을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것에서만 벗어나면 곧, 더 이상 자신을 싫어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Q :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 저를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니, 무슨 말씀인가요?

그 나름대로의 명확한 기준이 있는 듯싶지만, 실제로 사람은 자기의 마음대로 다른 사람들을 봅니다. 그렇다보니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자기의 마음대로 누구인가를 왜곡해서 보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는데, 이런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자신을 자꾸 보게 되면 누구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한 채, 점점 ‘나’를 왜곡해서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될수록 그만큼 더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것이고요.

Q : 음.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혐오하는 동물들의 경우를 생각해봐요. 많은 사람들이 뱀이나 쥐, 또, 바퀴벌레나 지렁이 등을 징그럽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뱀에게 뱀은, 쥐에게 쥐는, 또, 바퀴벌레에게는 바퀴벌레가, 지렁이에게 지렁이는 어떻게 보일까요? 과연 사람이 보듯이 서로를 그저 징그럽다고만 여길까요?

Q : 글쎄요? 잘 모르겠지만, 사람처럼 징그럽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만약, 서로를 사람처럼 생각한다면 어떻게 같이 모여서 살 수 있겠어요?

그런데 그 동물들이 사람의 눈으로 자기의 동족을 볼 수 있게 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즉, 그 동족들을 이상하고 징그럽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자신은 제대로 볼 수 있겠습니까? 보나마나 자신도 징그럽다고 생각하게 될 것인데, 동화에 나오는 미운 오리새끼가 자신을 그토록 혐오했던 이유가 바로, 오랫동안 다른 새끼오리들의 눈으로, 그 어미오리의 눈으로 자신을 본 까닭이죠.

Q : 그럼 저도 지금 제 자신을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는 중인가요?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이해하기보다는, 조금 전에 말했듯이, 자신을 왜곡해서 보는 사람들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합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을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렇다보니 자신에 만족하지 못한 채, 싫어하게 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또 정확하고요.

Q : 그러니까 결국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제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지 못하게 된 까닭에 지금처럼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아주 정확합니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죠.

Q : 그럼 제가 이렇게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직 ‘나’ 자신을 볼 수도 없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교사를 비롯한 매우 다양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그렇게 되라고 일방적으로 교육받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나’의 머릿속에는 ‘남이 본 나’만 들어찰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까닭에 다른 사람들의 왜곡된 눈으로 ‘나’를 보는 익숙함에서 벗어나라고 말한 것이고요.

Q : 하지만 저와 같은 교육을 받았어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래도 무엇인가 차이가 있었으니 지금과 같은 차이가 생긴 것이겠죠? 그런데 그 차이가 워낙 다양한 까닭에 한두 마디의 짧은 말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으니, 그것까지 모두 알고 싶다면 따로 찾아와서 배우세요. 하지만 그 차이를 모두 알게 되었다고 해서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기억하고요.

Q : 그래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과 못하는 학생들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처럼 해야지 그렇게 될 수 있듯이, ‘나’를 미워하지 않고 싶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는 노력을 해야죠.

Q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다른 사람들의 왜곡된 눈으로 ‘나’를 보는 익숙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나’ 스스로 ‘나’를 보는, 즉, ‘나’의 눈으로 ‘나’를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면 그만큼 더 ‘나’를 싫어하지 않게 될 것인데, 그러니 이제부터는 열심히 자신을 관찰하십시오.

Q :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가보군요?

당연하죠. 도무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나’를 조금의 왜곡됨도 없이, 아주 정확하게 보게 될 수 있으니까요.

Q : 그런데 혹시, 그렇게 하다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처럼 정신병자가 돼서 자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나르시스처럼 될 정도로 자신의 외모가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하나요? 잘 생긴 것으로, 예쁘기로 유명한 배우들도 자신의 외모에 불만이 있다고 하고, 그중에는 심지어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도 여럿 있는데, 그런 사람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외모가 몹시 대단한 것 같아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요. 그런 생각이나 말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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