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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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의 범위
고등학생 때의 어느 날, 당시 매우 가깝게 지내던 동네친구와 어디로인가 가던 중 대학생이던 그의 누나와 마주쳤다. 그러자 대뜸 친구는 자신의 누나를 마구 잡아 흔들기까지 하면서 무엇인가 먹을 것을 사달라고 졸랐는데, 싸움은 말려야한다는 말에 세뇌돼있던 데다 그런 모습에 익숙하지도 않던 나에게 두 사람은 몸싸움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창피하지도 않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건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 딴에는 도와준답시고 친구의 힘을 못 이긴 채 끌려 다니고 있는 그의 누나를 붙잡으면서 친구를 말렸고, 그러자 비로소 친구는 자신의 누나를 놔줬다. 하지만 며칠 뒤, 친구로부터 그날의 사건 때문에 자신의 누나가 나에게 잔뜩 화가 나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는 도와준 것 밖에 없는데,..
2014.03.27 -
어머니와 조카
어느덧 한 아이의 아비가 된 조카 한 명은, 한두 살 무렵쯤 물고 빠는 등 자신의 윗옷에 달려있는 작은 단추에 마땅한 이유도 없이 몹시 집착했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유를 몰랐던 것이었다) 단추가 달려있지 않은 윗옷은 아예 입지 않으려했고, 억지로 입히면 떼를 쓰면서 앙앙 울기만 했으니. 하지만 그런 조카를 말리기는커녕 어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손자의 모든 윗옷에다 오히려 작은 단추를 하나씩 달아주셨는데, 말을 안 듣는 놈은 맞아야한다는 말에 이미 잔뜩 세뇌되어있던 나에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참 낯설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하신다. “애가 좋다는데 어쩌니? 그러지 말라고 애랑 싸울 수는 없잖아. 더구나 아직 말도 못하는데..
2014.03.26 -
외로워지는 이유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의 어느 날, 사업 때문에 몹시 바빠 만나기 어려웠던 가까운 친척 한 분이 집에 오신 적이 있었다. 그날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 트림을 하고 말았다. “꺼억!” 그러자 가족 중 한 사람이 대뜸 나에게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눈알을 부라렸고, 그로부터 무려 30년 동안 그날의 사건(?) 때문에 나는 여러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등 시달려야했다. 심지어 내 자식이 보는 앞에서도. 나는 부모님을 비롯한 그 누구로부터도 어른과 함께 식사를 할 때는 트림을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건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겨우 9살짜리 꼬맹이가 자신도 모르는 새 트림을 한 번 한 것이 그토록 오랫동안 온간 비난을 받아야할 만큼 엄..
2014.03.25 -
죽음을 열망하던 시절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남을 해코지하기 좋아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내는 등 성질이 몹시 고약한 사람에 대한 불평을 참다못해 하면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이나 선배들로부터 꼭 듣는 말이 있었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 네가 참아라.” 위로는커녕 그런 말을 들으니 더욱 억울했는데, 하지만 너무 흔하게 듣다보니 나 역시 어느새 그러려니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성질 고약한 사람들이 뭇사람들의 묵인을 용납이라는 듯 악용해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잠깐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듯싶다가도 제대로 말리는 사람이 없다보니 곧 부모님이나 교사 등 어른마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실컷 성질을 부렸으니. 오히려 종종 그런 말썽꾸러기들이 피해자..
2014.03.24 -
아빠의 역할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의 어느 공휴일. 거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한참 뛰어놀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들이 갑자기 현관문 앞에서 큰소리로 “아빠!” 부르는 것이었다. “응?”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깜짝 놀라 얼른 큰소리로 대답했는데, 하지만 아들은 기다려도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누가 집에 못 들어오게 하나? 혹시, 집 앞에서 납치라도 됐나?’ 여러 가지 걱정스러운 생각이 스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때마침 잠시 외출했던 아내가 돌아와 아들의 무사함을 알렸다. “그냥 애들이랑 신나게 잘 놀고 있던데.” 아들에게 군것질거리도 사줬다는 말을 들으면서 겨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그 뒤에도 두어 번 더 아들은 또 똑같이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 ..
2014.03.23 -
작은 마음,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자주 가던 동네의 소형슈퍼가 있었다. 그곳의 여주인은 짬짬이 커다란 봉투 안에 잔뜩 들어있는 사탕을 몇 개씩 나누어 조그만 봉투에 다시 포장하는 부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불쑥 사탕 한 알을 집어먹고 싶다는 심술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작은데다 불량식품처럼 어디서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볼품없는 사탕이었건만.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생각이었던 데다가 딱히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모르는 척 무시했는데,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한 가지의 욕구로 자랐는지 그 대수롭지 않은 생각은 어느 날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여주인이 거스름돈을 내주는 아주 짧은 사이에 나도 모르게 계산대 위에 있던 큰 사탕봉투 속으로 재빨리 손을 뻗어 냉큼 사탕 한 알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내가 왜 이러..
2014.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