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1. 10:39ㆍ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떼로 덤비는 적은 나중에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각개 격파하라!’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간단하게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이것이 어린 시절에 내가 여러 해 동안 한동네 아이들의 천덕꾸러기로 치열하게 살면서 터득한 것 중 한 가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미 자신감을 잃은 데다, 등치가 나보다 훨씬 컸던 아이도 여럿 있었기에 모든 아이들과 싸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로 적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줄어들었다.
더구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각자 학교에서 사귄 새 친구들과 어울리기에 바빴던 데다가, 그 사이에 이사를 간 아이도 여럿 있다 보니 더욱 빨리.
하지만 나보다 두 살 많았던 악당 등, 그중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으로도 결코 친하게 지낼 수 없던 아이도 서너 명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겠다.’ 마음을 놓으면 어김없이 그들은 내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뒤통수를 쳤으니.
혼자는 자신이 없다보니 엉뚱한 아이까지 끌어들여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등으로.
뿐만 아니라, 이런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다보니 정작 친한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졌는데, 더 이상 이런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다보면 친한 친구들과 더 멀어질 수 있겠다 싶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아이들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그럴 때면 몹시 다정하게 늘 먼저 다가오던 그들.
마치, 순한 양이 되었다는 듯이.
그러면 마음이 약해져서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함께 어울렸는데, 하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
역시 ‘이제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할 때쯤이면 그때마다 또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방법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그런데 이런 그들의 모습은 성인이 된 뒤에도 거의 변화가 없다.
단지 어린 시절의 모습이 몇 꺼풀의 포장지 속에 조심스럽게 감춰져있을 뿐.
그렇다보니 아주 이따금씩 그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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