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31. 11:06ㆍ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한동네 아이들의 천덕꾸러기로 지내던 어느 날.
숨바꼭질을 하다가 아이들이 집에 들어가는 등 하나씩 둘씩 어디로인가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숨바꼭질은 흐지부지해졌는데, 마침 술래였던 나도 재미가 없어 다른 아이들이 흔히 그랬듯이 그냥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튿날이 되자 함께 숨바꼭질을 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나에게 술래를 안 하고 도망갔다며 무섭게 닦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중간에 그냥 자신의 집에 들어가 버렸던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너희들도 술래가 됐는데도 그냥 집에 간 적 많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만 이래? 그리고 너는 어제 그냥 집에 갔잖아! 그러니 넌 빠져!”
하지만 아무리 항변을 해도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면서 떼로 덤비는 아이들을 감당할 수는 없었는데, 그래서 결국 큰형이 힘들게 모아뒀던 귀한 우표까지 몰래 아이들에게 헌납(?)하며 겨우 마무리를 지었다.
이렇듯 어머니의 방치 때문에 몇몇 친구들을 비롯한 한동네 아이들에게 여러 해 동안 시달렸지만, 그렇다고 그 기억을 오랫동안 품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먼저 그 이유부터 생각해라’라는 어머니의 말씀 때문에 어린 나이에도 사람에 대해서 꽤 많이 알게 되는 등 내 나름대로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고, 또, 훗날 어머니가 당시 나를 챙길 수 있을 만큼조차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으니.
그런데 우리나라에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뒤, TV를 통해서 어린 자식을 방치하는 여러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저 삶을 즐기려고, 명확하지도 않은 꿈을 이루려고 등등.
그중에는 심지어 남편과 이혼까지 하고 멀리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는 엄마들도 있었는데, 그러나 처음에는 그녀들이 자식을 방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는 부엌데기가 아니다’ 등으로 모두들 그럴 듯한 이유를 당당하게 밝혔으니.
그러다가 그 뒤, 직접, 또, TV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방치된 채 어린 날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나 나처럼 방치된 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그러자 잔뜩 불안에 떨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조금씩 기억됐고, 그러면서 비로소 적지 않은 엄마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핑계로 어린 자식을 방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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