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1. 12:16ㆍ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초등학생 시절, 우리 집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형이 결혼하여 세를 살았었다.
아내와 겨우 한두 살 된 어린 아들과 함께.
지방에 사시던 그 형의 어머니는 종종 오셔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어린 손자가 함께 살던 단칸방에 꽤 오랫동안 머물다가 가셨는데, 우리 집에 계실 때면 자주 자신의 며느리에 대한 소소한 서운함을 내 어머니에게 털어놓으셨다.
그런데 두 분의 말씀을 옆에서 자꾸만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며느리에 대해서 점점 나쁘게 생각하게 됐다.
심지어 그 며느리를 형수라고 부르지도 않을 정도로.
그래서 내 딴에는 대신 보복을 한답시고 매운 음식을 먹이는 등 만만한 그녀의 손자를 자주 괴롭혔는데, 때로는 그 괴로워하는 모습에 너무 속이 시원해서 더욱 심하게 괴롭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무 말도 못한 채 잔뜩 벌게진 얼굴로 얼른 아들을 데려가던 그 형수.
하지만 그런 모습에 오히려 통쾌해하던 내 악행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그 뒤로도 꽤 여러 날 동안 계속됐었다.
그 뒤, 내가 고등학생일 때의 어느 날, 그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어머니는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불쑥 꺼내셨다.
“너, 걔를 참 미워했잖아.”
그 순간,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두 분이 다정하게 그 형수에 대한 험담을 주고받으실 때는 언제고, 왜 나한테만 모든 책임이 있다는 듯이 말씀하시지? 더구나 내가 그 아이를 괴롭힐 때, 두 분은 거의 옆에서 구경만 하시지 않았는가?’
어머니에 대한 야속함이 잔뜩 느껴지는 동시에 내가 어린 날에 오랫동안, 더구나 말조차 못하는 아이에게 너무 큰 잘못을 했음을 비로소 깨달았는데, 그 뒤로도 그 아이를 괴롭히던 기억은 종종 떠올라 더욱 미안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된 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 위험한 부모의 말이나 행동도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들을 가끔씩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 악행이 시작된 이유를 비로소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아직 어릴 때는 말 한마디에도 쉽게 휘둘릴 수 있으니, 아이 앞에서는 말 한마디, 행동 한 가지도 조심해야하는구나’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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