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1. 10:40ㆍ푯말의 대화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대인관계가 참 힘듭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왜 쉬운 문제로 고민하나요?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어떻게 된다고 했죠?
Q : 백전백승이라고 했죠. 하지만 저는 사람들을 이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그런 방법을 알고 싶은 것도 아니고요. 더구나 친구들이 적은 아니잖아요?
‘지피지기 백전백승’은 사람들이 임의로 바꾼 말이고, 손자는 원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말했다더군요.
그러니 상대방과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는 진짜 이유는, 그저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위태롭지 않게 되기 위함이라고 이해해야 정확하겠죠. 또, ‘피(彼)’도, 그저 적보다는, ‘저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이라고 이해해야 좀 더 정확하고요.
Q : 그러니까 지금처럼 대인관계에서 위태로움을, 즉, 어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과 제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상대란, 즉, 다른 사람들이란 반드시 만나야지 알 수 있는 반면, 자신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또, 얼마든지 알 수 있으니, 당연히 먼저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해야할 것인데, 그래서 ‘나’를 아는 것은 모든 대인관계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 ‘나’를 아는 것이 또 그렇게 연결되는군요.
그러니 ‘나’를 알아가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거죠. 그런데 설마 ‘알게 된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혹은, ‘친구들과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Q : 왜요?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나요?
도둑이나 강도, 혹은, 연쇄살인범과 같이, 이 세상에는 아무리 사이좋게 지내려고 해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답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배신만 당하겠죠? 더구나 그런 사람들은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도, 심지어 가족들 중에도 섞여있답니다.
Q :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학생들이 여럿 있던데, 그 학생들은 누구에게 그런 괴롭힘을 당하죠? 또,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던데, 그 사람들은 누구 때문에 그런 엄청난 고통을 겪는 것일까요?
Q : 그럼 푯말님은 대인관계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옷가게에는 ‘나’에게 맞는 옷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옷들도 많이 있듯이, 이 세상에는 ‘나’와 맞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답니다. 그러니 대인관계는 그중에서 ‘나’와 맞는 사람들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겠죠? 그리고 그렇게 하다보면 대인관계에 점점 자신감도 갖게 된답니다.
Q : ‘나’와 맞는 사람이요?
그러나 마치,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것처럼,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들과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려한다면 점점 더 힘들어지겠죠. 그러다보면 자꾸만 대인관계에 자신감도 잃게 될 것이고요. 대인관계에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인데, 따라서 무작정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자’ 생각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합니다.
Q : 그래도 ‘친구는 가리지 말고 사귀어야한다’ 말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가끔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와는 놀지 말라’, ‘가난한 집의 아이와는 놀지 말라’라는 등의 말도 하죠.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한 입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야할까요? 또, 따른다면 과연 그중에서 어떤 말을 따라야할까요?
Q : 음.
그 생각 없는 사람들의 얕은 말장난에 현혹되지 말고, 이제부터 ‘나’와 맞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 찾아보고, 또, 그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훈련을 해봐요.
그렇게 한다면 머지않아서 대인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자신 있게 사귈 수 있게 될 것이고요.
Q : 하지만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잖아요?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그런 노력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될 뿐입니다. 보나마나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는 무조건 친하게 지내야한다’ 등의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것이니, 그런 노력을 할 생각이나 했겠어요?
Q : 그러니까요. 어떻게 하면 ‘나’와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내 몸의 치수를 모르면 그만큼 ‘나’에게 맞는 옷을 고르기는 힘들겠죠? 그와 마찬가지로, ‘나’를 모르면 당연히 ‘나’와 맞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그 모든 문제들이 저절로 다 해결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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