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자 이야기

2011. 8. 17. 02:10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저는 진화론을 추종하는 사람인데, 푯말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황당한 질문인가요? 진화론을 선택하든지 창조론을 선택하든지 상관없이, 본인만 좋으면 되지, 그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런 선택은 아무도 간섭하면 안 되는, 오직 개인만의 영역이 아닌가요?

Q : 그렇군요. 저는 제 선택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질문했던 것뿐이니, 다른 오해는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굳이 간섭할 부분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오해할 부분도 없는데요 뭐.

물론, 그런 선택이 매우 위험한 부분은 분명히 있죠.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선택 자체에 대하여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Q : 그건 무슨 말씀인가요? 제 선택이 위험하다니요? 진화론은 위험하고, 창조론은 안전하다는 뜻인가요?

이런. 진화론이 위험하다는 말을 창조론은 안전하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나요? 그렇게 해석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의도로 말했던 것은 결코 아니니 쓸데없는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Q : 그럼 왜 제가 진화론을 선택한 것이 위험하다고 말씀하신 거죠?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질문을 하나하죠. 혹시, 이제까지 단 한번이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왜 사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Q : 물론이죠. 요즘도 시간이 있을 때면 그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요. 그런데 그런 생각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누구나 다 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며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일반화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싶고, 그렇다면 진화론에 근거해서 그 답을 구한 적이 있습니까? 즉, 진화론에 근거하면 자신이 이 세상에 왜 태어났고, 왜 살며, 또, 어떻게 살아야한다고 결론이 나왔느냐는 말입니다.

Q : 글쎄요? 그렇게까지 생각했던 적이 없는데요. 뭐,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생각해보죠. (잠시 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오지 않는군요. 그저 ‘아무 것도 없다’ 뿐이에요. 그러니 굳이 그 답을 말하라면, 저는 태어난 이유도 없으며, 사는 이유도 없고, 또,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것도 없어요.

그렇죠? 따라서 진화론에 근거하면 사람은,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자신이 왜 사는지, 또,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Q : 저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존재라는 말인가요?

진화론에 근거하면 당연히 그런 결론에 이르겠죠. 따라서 굳이 복잡하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아무렇게나 대충 살다가, 역시 아무렇게나 죽으면 되고요.

Q : 그런데 왜 이렇게 되는 거죠?

그것까지야 내가 알 수 없죠. 아무튼, 틈이 있을 때마다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살까?’, 또, ‘어떻게 살아야할까?’ 생각한다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진화론을 추종하겠다는 것은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지 않나요? 서로 모순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매우 위험한 선택을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만.

Q : 그럼 제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창조론을 추종해야 하나요?

그저 지금의 선택에 대한 문제점을 말한 것뿐. 그렇다고 지금의 선택을 버리고 무턱대고 창조론을 따르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미 말했듯이, 그런 선택은 누구도 침범하면 안 되는 각 개인의 고유영역이니까요. 분명히 창조론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진화론을 선택했던 것 아닌가요?

Q : 그렇죠. 창조론은 여러 가지로 허무맹랑한 소리 같아서요.

그것 봐요.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면서 어떻게 갑자기 창조론을 추종하겠어요? 그러니 좀 더 이것저것 신중하게 따져본 뒤에 선택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군요.

Q : 음.

그건 그렇고, 기왕 말이 나왔으니, 이번에는 천체물리학에 근거해서 자신은 왜 사는지 생각해볼래요?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생각해보고요.

Q : (잠시 뒤) 아무래도 또 같은 결론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그렇죠? 천체물리학에 근거해도 역시 ‘나’란, 사람은 그저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진화론이나 천체물리학에서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것이 과학계 전체의 입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이런 학문이 학교에서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주입되고 있습니다.

Q : 이거 참.

또, TV를 비롯한 각종 보도매체에서는 그런 진화론이나 천체물리학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소개하고 있고요. 그렇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학문들에 오염되어 한편으로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기 바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제부터는 좀 더 신중해졌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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