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2011. 8. 17. 14:49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 말하던데, 아무래도 푯말님은 그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이제까지 나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여럿 봤는데, 과연 그 사람들이 정답이 있는지 제대로 찾아봤던 적이나 있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아무튼, 나야 실제로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이 말하는 정답이 있는지 없는지 찾아봤으며, 그래서 그것을 직접 찾아냈던 사람이니, 그들과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Q :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만약, 그런 노력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결코 그렇게 말하지는 못합니다. 조금만 노력해도 미처 모르고 있던 매우 여러 가지 사실들을 연이어 깨달아 알게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그런 말은 이 세상을 사는 데에 정답이 있는지 찾아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나 떠들어댄다고 이해하면 정확할 듯싶군요.

Q : 그래도 무엇인가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이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다보면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이 세상에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그저 단편적인 논리의 생각만 계속해서는 안 된다’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죠.

Q : 무슨 말씀인가요? 좀 어렵네요.

많은 사람들이 흔히,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의리를 지켜야한다’, 또,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야한다’ 등의, 매우 단편적인 논리의 말을 많이 하는데, 사람이 실제로 언제나, 어디서나 그렇게만 살다가는 여러 가지 문제에 계속해서 시달리게 되며, 그래서 매우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Q : 아, 네에. 그런데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남은 어떻게 되든지, ‘나만 좋으면 된다’ 생각하면서 그저 자기의 마음대로만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죠. 이런 사람들 중에는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라는 말을 어디에서인가 주워듣고는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라고 바꾸어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더군요.

Q : 그래요?

따라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아무렇게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하여’라고 이해하면 될 듯싶습니다.

Q :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주된 이유’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요?

‘내 마음대로 살면 된다’ 말하는 등, 비록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와 같은 의미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밖에도 엄청나게 많이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거죠.

그래서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도 않은 채, 그렇게 말한다고 말한 것이고요.

Q : 하지만 자기의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잘라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정답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알기 위하여 노력해야하죠. 그 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코 그 결론에 이를 수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그저 ‘나만 좋으면 된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런 노력을 충분하게 했을 것 같습니까? 물론, 물을 때마다 ‘나도 노력한다’ 대답하지만, 그중에서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더군요.

Q : 음.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자신에게 관심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따금씩,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 까닭에, 그 이상의 노력을 하는 사람은, 즉,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은 그중에서 만나기 매우 힘들죠.

Q : 먹고 살기 위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죠.

그중에는 먹을 걱정이나 입을 걱정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배불리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답니다. 심지어 ‘할 것이 없는 까닭에 심심해서 미칠 지경이다’ 말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죠. 그러면서도 자신을 알려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는데, 따라서 무턱대고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도 매우 위험합니다.

Q : 그럼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왜 그런 거예요?

이미 여러 번 말했듯이, 마치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남들은 어떻게 되든지 , 그저 자기의 마음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궁리만 하기에 그렇다니까요.

Q : 그럼 자신을 알게 되면 달라지나요?

본격적으로 자신을 알기 시작하면 사람은 ‘나만큼 다른 사람들 역시 소중하다’ 깨닫게 되니, ‘나만 좋으면 된다’, 혹은, ‘나만 잘 되면 된다’ 등의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죠. 그렇다보니 그저 자기의 마음대로만 살아가려고 하지도 않고요.

그러니 더 이상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 말할 이유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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