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6. 12:04ㆍ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얼마 전, 30대 초반의 한 청년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외할머니가 위독하시데요. 저를 끔찍이도 아껴주셨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해요?”
그로부터 며칠 뒤, 그 청년은 다시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결국 자신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제가 가족 중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오직 외할머니뿐이었는데, 이제는 도대체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할까요?”
‘얘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까지 외할머니한테 기생해서 살 생각만 하는 거야?’
그래서 결국 한마디 하고 말았다.
“그래서야 외할머니가 마음 편히 떠나실 수 있겠어? ‘이제부터 저도 외할머니처럼 성숙한 어른으로서 가족에게, 후손에게 사랑을 나눠주면서 살 테니, 아무런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말하고 보내드리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훨씬 낫지 않겠어?”
그제야 비로소 그 젊은이의 흐느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자네가 외할머니의 뒤를 이어야할 텐데, 그렇게 울기만 해서야 언제 그 뒤를 이을 수 있겠어?”
다시 그로부터 며칠 뒤, 그 젊은이가 이전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할머니는 잘 보내드렸어요. 선생님 말씀처럼, 이제부터 제가 할머니의 뒤를 이을 테니, 아무런 걱정 마시고 편히 잘 가시라고 했죠.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까 저도 한결 편해지더군요.”
물론, 더구나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해주던, 그래서 믿고 의지하던 사람의 죽음은 참 감당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또, 비록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의지할 사람이 전혀 없이 이 세상을 산다는 것도 감당하기 결코 쉽지 않고.
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운명.
그렇다면 언제인가는 죽을 사람을 위해서라도 혼자서도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훨씬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무턱대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기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