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7. 18:21ㆍ세상 속 이야기/객관적으로 본 성경
여호와가 죽음까지 예고하면서 강력하게 먹지 말라고 경고했건만, 아담은 너무도 쉽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만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그 결과, 기어코 선악을 알게 됐다는 아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창 3:22)
그런데 아담이 선악을 알게 됐다는 것은 곧, 자기 나름대로의 잣대, 즉, 자기만의 기준을 갖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법이나 제도, 혹은, 도덕 등 기준에 따라 선악을 판단하고, 좋거나 나쁨을 나눈다는 사실로 추측할 수 있듯이.
그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기본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은 바로 사람 자신.
그래서 사람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마음에 들면 좋아하며,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나쁘다’, ‘잘못됐다’ 등으로 불만을 갖거나 불평을 하는데, 그러니 아담이 선악을 알게 됐다는 것은 곧 아담이 자신을 기준으로 심지어 여호와를 판단하게 됐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혹은, ‘내 생각에’ 등으로.
물론, 이같이 되는 것이 아담으로서는 매우 당연할 수도 있다.
비록 여호와에게는 완벽하다고 해도, 그중에는 아담에게 거슬리는 것이 있을 수도 있으며, 편애하고 싶은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있거나 말거나 아예 관심을 갖고 싶지 않은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또, 여호와가 아담 자신을 비롯한 천지만물을 창조한 창조주라고 해도, 아담에게 받아들이기 몹시 어려운 점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하지만 아담이 자신만의 잣대를 갖게 됐다는 것은 결국 여호와로부터의 영원한 독립을 선언하는 꼴이 된다.
아담이 자신만의 잣대를 갖게 됐다고 해도 여호와 안에 계속 있으려면 자신만의 잣대가 아닌 여호와의 잣대에 따라야하니.
즉,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1)라는 여호와의 잣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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