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23. 10:29ㆍ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의 어느 공휴일.
거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한참 뛰어놀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들이 갑자기 현관문 앞에서 큰소리로 “아빠!” 부르는 것이었다.
“응?”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깜짝 놀라 얼른 큰소리로 대답했는데, 하지만 아들은 기다려도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누가 집에 못 들어오게 하나? 혹시, 집 앞에서 납치라도 됐나?’
여러 가지 걱정스러운 생각이 스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때마침 잠시 외출했던 아내가 돌아와 아들의 무사함을 알렸다.
“그냥 애들이랑 신나게 잘 놀고 있던데.”
아들에게 군것질거리도 사줬다는 말을 들으면서 겨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그 뒤에도 두어 번 더 아들은 또 똑같이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 녀석이 왜 저러지? 불렀으면 걱정 안하게 얼굴이나 보여주던지.’
살짝 짜증이 밀려오는 사이, 문득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나도 어릴 때 엄마가 집에 없으면 몹시 불안해했었지. 이 녀석이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을 보호해줄 아빠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자꾸 저러는 걸 거야.’
그제야 비로소 아들의 마음을 눈치 챘는데, 그러면서 아비의 역할 한 가지를 알게 됐다.
‘나는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데도 아들은 저렇게 마냥 신나게 뛰어놀 수 있구나. 그래, 나는 그냥 내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되는구나. 그것만으로도 아비의 역할을 어느 정도는 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그 뒤부터 내 자리를 지키려 노력하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낮잠을 자다가 아빠를 부르는 아들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깨도 오히려 반가웠다.
‘그래, 아빠는 여기 잘 있으니, 아무런 걱정 말고 너는 신나게 잘 놀아라.’
그런데 그러다보니 점점 외출하기가 힘들어졌다.
내가 없는 사이에, 아비라는 내 자리를 지키지 않는 사이에 아들이 잔뜩 불안함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다보니.
그 때문에 아내 등 여러 사람에게 이런저런 불평도 들었는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아니면 어린 아들에게 아빠라는 자리를 지켜줄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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