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조카

2014. 3. 26. 09:59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어느덧 한 아이의 아비가 된 조카 한 명은, 한두 살 무렵쯤 물고 빠는 등 자신의 윗옷에 달려있는 작은 단추에 마땅한 이유도 없이 몹시 집착했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유를 몰랐던 것이었다)

단추가 달려있지 않은 윗옷은 아예 입지 않으려했고, 억지로 입히면 떼를 쓰면서 앙앙 울기만 했으니.

하지만 그런 조카를 말리기는커녕 어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손자의 모든 윗옷에다 오히려 작은 단추를 하나씩 달아주셨는데, 말을 안 듣는 놈은 맞아야한다는 말에 이미 잔뜩 세뇌되어있던 나에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참 낯설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하신다.

애가 좋다는데 어쩌니? 그러지 말라고 애랑 싸울 수는 없잖아. 더구나 아직 말도 못하는데다가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애랑.”

그렇지, 말도 안 통하는 애랑 싸울 수는 없지.’

듣고 보니 그럴 듯싶어서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러다가 내 자식들을 키우면서, 더구나 이따금씩 말도 안 통하는 아이와 큰소리를 치며 맞서 싸우는 몇몇 아비나 어미를 보면서 그날의 어머니의 그 짧은 말씀에는 매우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하나씩하나씩 깨닫게 되었다.

아하! 부모가 자식과 맞서 싸우면 안 되는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맞서 싸우면 자식은 부모를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으로만 여기겠구나. , 부모야 이미 그 시절을 지났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식을 이해할 수 있지만, 아직 그 시절을 지나지 못한 자식은 당연히 부모의 마음을 모를 것이니 그런 자식에게 이해를 바라면 안 되겠구나! 그래, 내가 내 자식들의 마음을 대략이라도 헤아리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대신해서 내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께서 그 짧은 말씀에 일부러 그렇게 매우 여러 가지 의미를 담으셨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기억 속 내 어린 시절의 어머니 역시 자식들이 당신에게 순종하기만 바라셨으니.

하지만 그날 들었던 어머니의 말씀이 그동안 자식들을 키우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됐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아들이 컴퓨터에만 빠져있을 때에도 조바심 않고 지켜볼 수 있었으니.

그 나이가 아니면 언제 그렇게 할 수 있겠니?’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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