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견의 범위

2014. 3. 27. 10:22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고등학생 때의 어느 날, 당시 매우 가깝게 지내던 동네친구와 어디로인가 가던 중 대학생이던 그의 누나와 마주쳤다.

그러자 대뜸 친구는 자신의 누나를 마구 잡아 흔들기까지 하면서 무엇인가 먹을 것을 사달라고 졸랐는데, 싸움은 말려야한다는 말에 세뇌돼있던 데다 그런 모습에 익숙하지도 않던 나에게 두 사람은 몸싸움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창피하지도 않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건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 딴에는 도와준답시고 친구의 힘을 못 이긴 채 끌려 다니고 있는 그의 누나를 붙잡으면서 친구를 말렸고, 그러자 비로소 친구는 자신의 누나를 놔줬다.

하지만 며칠 뒤, 친구로부터 그날의 사건 때문에 자신의 누나가 나에게 잔뜩 화가 나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는 도와준 것 밖에 없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화를 내? 말도 안 되는 소리!’

처음에는 친구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몇 시간 뒤 우연히 마주친 그의 누나는 진짜 큰소리로 내게 화를 냈다.

,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친구의 누나는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만 말하고는 휙 지나쳐 가버렸으니.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이 안 나는 한 어른으로부터 팔이 안으로 굽는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절대로 간섭하지 말라는 말씀을 흘깃 들었다.

왜 그래야하지? 서로 싸우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말려야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 뒤에도 한두 번 더 팔이 안으로 굽는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 끼어들었다가 오히려 이간질이나 하는 나쁜 놈으로 몰리는 등 잔뜩 곤욕을 치렀고, 그러고 나서야 겨우 내게 몹시 화를 낸 친구의 누나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 그 어른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꼴 당하지 말라고 그때 그렇게 말씀하셨던 거구나. 진즉에 좀 새겨들을 걸.’

그런데 그렇게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니 자연스럽게 나는 간섭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그 어른의 말씀처럼, 부부나 가족, 혹은, 막역한 친구 사이 등 팔이 안으로 굽는 사이 안에는 절대로 끼어들지 말자. 괜히 끼어들었다가는 이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 나름대로는 도와주고도 억울한 일만 잔뜩 당할 수도 있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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