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만들기 3

2014. 4. 10. 15:47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내가 군대에 입대한 뒤에도 가정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머니에 돈이 없던 데다, 각기 소속부서도 다른 등 이런저런 이유로 동기들과 어울릴 시간이 적다보니 P.X.에 혼자 갈 때가 종종 있었는데, 한 군대친구는 그런 나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너는 왜 자꾸 혼자 P.X.에 가니? 혼자 맛있는 것 먹으면 좋니?”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람들의 질문에 익숙해있던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돈이 없으니 그렇지. 너희들은 왕창 사먹을 때 나는 조금만 사먹으면 약 오르고, 그렇다고 자꾸 얻어먹으면 미안하잖아.”

그러나 뻔뻔할 정도로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그 친구는 아직도 무엇인가 개운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동안 두고 봤던 그의 성품이 참 괜찮았기에 언제인가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내 편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꼭 필요할 때 최소한의 도움만 줘도 얼마든지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으니.’

그러던 어느 날인가,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그 친구가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열심히 빌리러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앞서 들은 말 때문인지 아예 나에게는 말조차 걸지 않은 채.

‘P.X. 좀 작작 다니지.’

나 역시 처음에는 못 본 척 잠자코 있었는데, 그렇게 한참이 지났어도 그는 아직 돈을 빌리지 못한 채 쩔쩔매면서 돈을 빌릴 적당한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지금이 기회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를 조용히 불러냈고, 돈이 필요한 이유는 아예 묻지도 않은 채 필요하다는 만큼의 돈을 선뜻 빌려줬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급한 대로 써라.”

그러자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았다는 듯 그는 순간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고맙다면서 어디로인가 총총히 사라졌다.

그날을 계기로 군대에서뿐만 아니라, 군대를 제대한 뒤에도 꽤 오랫동안 그와는 서로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연락이 닿지 않아 지금은 이따금씩 그리워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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