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1

2014. 4. 10. 10:37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초등학생 시절, 누구인가 돈이나 맛있는 음식 등 무엇인가 좋은 것을 갖고 있으면 꼭 알겨먹으려는 아이들이 있었다.

심지어 때로는 몹시 비굴한 표정까지 지으며 상대방이 지칠 만큼 집요하게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기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등의 강압적인 방법으로.

그러다가 더 이상 알겨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면 그 아이들은 마치 헌신짝을 버리듯이 알겨먹은 아이로부터 아주 냉정하게 돌아섰는데, 나도 그런 아이들에게 몇 번 당한 적이 있던 터라 한두 번 그 흉내를 내봤지만 그들처럼 모질지 못했던 까닭인지 번번이 잔뜩 지쳐서 곧 포기하고 말았다.

이 짓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렇다보니 그 뒤, 그들이 누구인가를 알겨먹는 모습을 볼 때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어쩌면 저렇게 지치지도 않지? 그리고 어쩌면 저렇게 냉정하게 돌아설 수 있지? 알겨먹은 아이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그러면서도 잔뜩 알겨먹은 아이에게도 자신의 것은 조금도 나누어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 아이들.

그 뻔뻔함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아이들은 나에게 그저 도둑이나 강도쯤으로만 여겨졌고, 그래서 함부로 자랑하면 도둑이나 강도만 잔뜩 꼬이게 된다.’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여러 해 전의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돈이 좀 있다는 한 남자가 나에게 잔뜩 볼멘소리를 늘어놨다.

이상하게 나한테는 자꾸 내 돈만 바라는 여자가 꼬여요. 그러다보니 나를 좋다고 하는 여자는 먼저 의심부터 하게 되더라고요.”

그의 말을 듣다보니 얼핏 어릴 때 봤던 남을 알겨먹기 좋아하던 아이들이 생각나 혹시 돈 자랑하기를 좋아하지 않는지 돌려서 물었더니 얼른 그렇다고 대답한다.

남자라면 여자한테 돈을 쓸 줄 알아야죠. 나는 여자한테 돈을 쓰지 않는 남자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돈도 없이 무슨 염치로 여자를 만나나?’ 생각만 들고.”

그렇게 돈 자랑을 해대니 자꾸 도둑이나 강도가 꼬이지

그의 대답을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는데, 하지만 당시는 그에게 충고를 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그냥 같이 가슴 아파하는 척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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