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8. 10:04ㆍ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친 뒤 친구와 수다를 떨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서점에 진열돼있던 책 한 권의 제목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책상은 책상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냥 무시하고 말았다.
‘당연히 책상은 책상이지. 당연한 걸 왜 이상하다는 듯 써놔?’
그러고는 그냥 지나치려는데 문득 점심시간이면 늘 책상 위에 꺼내놓은 도시락을 먹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지, 책상은 밥상이 될 수도 있지. 또, 작업대가 될 수도 있잖아. 그런데도 왜 책상은 책상으로만 사용해야한다는 듯 써놨지?’
그렇게 그 제목만 갖고 생각을 이어가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래, 책상은 작업대라고 말할 수도 있고, 밥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등 누구나 얼마든지 자신의 마음대로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지. 보나마나 사람들은 책상이 아닌 작업대나 밥상 등을 떠올리게 될 테니. 그러니 사람들이 쉽게 알아듣게 하려면 책상은 책상이라고 말해야해.’
그래서 ‘일반성’(혹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작자가 책의 제목을 그렇게 정했나보다 생각하게 됐는데,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에도 또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는 등 생각을 이어갈수록 그 속에 담겨진 새로운 의미를 계속해서 알게 됐으니.
그렇게 정작 책은 읽지도 않은 채 대략 한 달 동안을 오직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제목만 갖고 씨름을 하던 8월의 어느 여름날.
푸세식 화장실에 앉아 끙끙대던 나는 그 속에는 ‘자격’(혹은, ‘조건’)이라는 의미도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 책상은 책상다워야지 책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 부서진 책상처럼 책상답지 않은 책상은 결코 책상이라고 말할 수 없어. 그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도 말하는구나.’
그것이 ‘책상은 책상이다’의 마지막 결론이었는데,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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