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7. 11:15ㆍ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나로 푯말이 되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도 알게 된 뒤, 한동안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나의 기원(基源)에게 이같이 간구했었다.
새벽으로, 밤으로.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내 주제에 어떻게 푯말이 될 수 있을까?’ 생각되었다.
‘겨우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그런 어느 날인가, 나보다 5살 많은 한 선배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한마디 들었다.
“너는 아직 세상을 몰라”
그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사람공부를 해온 나에게 아직 세상을 모른다니.
‘나를, 그동안 내가 했던 고생을 도대체 뭐로 보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보다 5년이나 더 산 사람의 말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는데, 그 뒤 며칠 안 되어 결국 나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 어린 나이에 어떻게 푯말이 될 수 있을까?’ 생각과 그 선배의 충고가 맞물려 ‘이 어린 나이에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이렇게 기고만장할까?’ 생각되었으니.
그래서 그날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알게 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처음부터 하나하나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 뒤로 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인가 불쑥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자꾸만 복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다 아는 거잖아. 그런데 왜 멍청하게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지?’
그렇다고 섣불리 그 멍청한 짓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때도 그 선배로부터 여전히 “너는 아직 세상을 몰라”라는 말을 듣다보니 ‘혹시, 좀 더 가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있을까?’ 생각되었기에.
그렇게 20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그동안 지나온 길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생업을 그만두고 기억이 나는 대로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진짜 멍청했음을 알게 됐다.
시간을 두고 차분히 정리만 했으면 됐을 것을 그 선배의 말에 휘둘려 아주 어릴 때부터 이미 했던 고생을 20년 동안 또 쓸데없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데다, 그 선배가 알고 있는 것을 내가 이미 벌써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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