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익숙해지다

2014. 4. 14. 12:48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훈련병 시절, 훈련소에 입소하던 첫날부터 나와 동기생들은 매일 밤마다 무서운 내무반장에게 온갖 이유로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몹시 고통스러운 얼차려에 받아야했다.

깍지 끼고 엎드려뻗치기, 원산폭격, 한강철교 등등의.

더구나 저녁까지 고된 훈련을 마친 뒤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얼차려를 받을 때면 다들 더욱 죽어났는데, 오죽하면 하루 중 잠자기 직전이 가장 두려울 정도였다.

그러다가 훈련이 후반기로 접어들 무렵쯤, 내무반장이 날마다 계속하던 얼차려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루 이틀 거르기 시작했다.

웬일이지?’

하지만 처음에는 내무반장이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더구나 무슨 까닭이든지 얼차려를 안 받으면 우리는 좋았으니.

그러나 그 뒤로 얼차려가 더욱 줄어들자 오히려 우리들은 내무반장의 불호령이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기어이 한 동기생이 점호를 마치고 돌아서는 내무반장을 향해 돌연 입을 열었다.

오늘은 한따까리 없습니까?”

그의 말에 엷게 미소를 지으며 돌아선 내무반장은 곧 몹시 무서운 표정을 짓더니 이전처럼 또 불호령을 내렸다.

이 새끼들이, 군기가 빠져가지고. 다들 대가리 박아!”

그 날, 점호시간만 되면 불안함에 떨던 우리는 기분 좋게 심지어 웃기까지 하면서 잠깐 동안 얼차려를 받았는데, 잠자리에 누우니 문득 우리들이 어느새 고통스러운 얼차려에 익숙해져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에도 익숙해질 수 있구나

그런데 이날의 경험은 훗날,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부모를 비롯한 가족에게 많은 상처를 받는 등 잔뜩 억눌린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어린 시절의 나 자신도 포함해서.

그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고통에 익숙해졌을 것이며,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는 상처를 받는 등 억눌리지 않으면 오히려 잔뜩 불안하게 됐을 것이니.

훈련소 시절의 나와 동기들처럼.

'세상 속 이야기 > 푯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씨 뿌리는 사람들 1  (0) 2014.04.15
주먹이 앞선다는 것은 2  (0) 2014.04.15
이외수를 발견하다  (3) 2014.04.14
글을 통한 사람공부 4  (0) 2014.04.13
글을 통한 사람공부 3  (0) 2014.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