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8. 22:46ㆍ푯말의 대화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나’를 알면, 책에 나오는 것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호랑이나 사자 등으로 몸을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도술도 부릴 수 있나요?
글쎄요? 나는 아직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니,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군요. 그리고 ‘나’를 알게 되면, 나아가 ‘나’를 찾게 되면 그렇게 도술을 부릴 수 있다는 근거도 아직까지는 전혀 찾지 못했고요.
Q : 그래요? 그럼 ‘나’를 알면 숨을 안 쉬거나, 밥을 안 먹어도 살 수 있나요? 또,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게 될 수도 있나요?
전에 어떤 인간이 ‘나’를 알면 죽게 된다고 했다는데, 혹시 ‘나’를 알면 귀신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살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숨을 쉬지 않고, 밥을 안 먹으며, 또,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어요? 물론, 그런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될 필요가 있나요?
Q : 물속에서도 편하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숨을 쉬지 않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먹고 살기 위해서는 힘들게 돈을 벌어야하고요. 또, 아프면 안 좋잖아요?
쉽게 말해서, ‘나’를 알면 공기통이 없이도 물속이나 우주에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느냐는 뜻이군요? 또, 돈을 안 벌어도 되느냐는 뜻이고요? 글쎄요?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Q : 그럼 이 세상에 전혀 없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 수 있는 창조능력은 생기나요?
많이 오해하고 있으신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게 되는 것과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들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말씀하신 것들과 ‘나’를 연결하여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을 듯싶군요.
Q : 그렇다면 제가 말한 것들은 ‘나’를 알게 되어도 못한다는 말씀인가요?
물론, 도술을 부리기 위하여, 새로운 물질을 창조하기 위하여, 혹은, 물속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지금 말씀하신 것들이 가능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Q :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그럼 예수님처럼, 물고기 다섯 마리와 떡 두 덩어리로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줄 수 있게 되나요?
역시, 아직까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 입장에서는 가능하다고, 혹은,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군요. 또, 나와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은 이때까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Q : 그러면 ‘나’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뭐죠? 전혀 없잖아요? 그렇다면 굳이 ‘나’를 알기 위하여 노력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같은 크기와 모양의 상자가 두 개 있는데, 한 상자에는 황금이 가득 들어있고, 다른 한 상자에는 각종 쓰레기가 잔뜩 들어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그 모양과 크기가 같으니 ‘두 상자는 같다’ 말하나요? 차이가 전혀 없는 것 같아요? 만약, 두 상자 중 하나를 가지라고 하면 그저 크기와 모양을 기준으로 선택하겠어요?
Q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황금이 들어있는 상자를 갖겠죠.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음식점의 같은 탁자에 마주앉아서 자장면을 먹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한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자장면을 먹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인가의 강요를 못 이겨서 억지로 자장면을 먹고 있다면, 이 두 사람을 같다고 말해야할까요?
Q : 자장면을 먹는 것이야 같지만, 그 이유는 다르다고 말해야겠죠.
그와 같이,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다고 해도, 자신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또, 비록 같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의지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과, 다른 사람들에게 잔뜩 휘둘려서는 그 의지대로 앵무새처럼 말하고, 노예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똑같을 수 없죠.
Q : 음.
상자의 가치가 그 내용물에 따라서 달라지듯이, 사람의 가치도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사람의 말이나 행동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그런데도 어떻게 ‘나’를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없다고 말하죠?
그렇게 생각한다면 계속해서 지금처럼 살아가요. 누가 말리나요?
Q : 그래도 도술을 부릴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굳이 힘들게 ‘나’를 알기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요?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던가요? 누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죽인다고 협박을 하던가요? 혹은, 누가 ‘나’를 알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살 수 없다고 말하던가요?
Q :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알면 좋다고들 말해서, 뭐가 좋은지 물어본 거죠.
나도 그런 협박이나 강요는 들은 적이 없고, 그렇다고 내가 그런 모진 성격의 사람은 아니니, ‘나’를 알기 위하여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그냥 살아갈 것인지, 선택은 본인이 알아서 해요. 선택까지 내가 대신해줄 수는 없잖아요?
'푯말의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알게 될수록 (0) | 2011.08.18 |
---|---|
‘나’를 알면 3 (1) | 2011.08.18 |
‘나’를 알면 1 (0) | 2011.08.18 |
‘나’를 알기 싫은데 (0) | 2011.08.17 |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0) | 2011.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