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면 3

2011. 8. 18. 22:53푯말의 대화

사람들이야 궁금하니 묻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 받으면 ‘참 지겹다’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겨운 것은, 같은 내용의 답을 몇 십 번씩, 몇 백 번씩, 심지어 몇 천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나(我)’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여러 해 동안 ‘나는 누구지?’ 고민하는, ‘나를 알고 싶다’ 말하는 수 만 명의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을 최대한 순화하여 질문의 유형별로 정리했다.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대화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식 같은 연놈들에게까지 온갖 험악한 소리를 들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 아닌 대화들까지 포함하여.

Q : ‘나’를 알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나요?

글쎄요? 자신을 알게 되면 왜 사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두 알게 되니 돈도 어떻게 벌어야할지 알게 되기야 하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잘라서 말하기는 매우 어렵군요. 더구나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내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고요.

Q : 그래요? 그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은 알게 되나요?

그것 역시 내 입장에서는 무엇이라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그렇다고 말하면 보나마나 누구인가 내게, ‘그렇게 잘 알면서 너는 왜 아직도 그 모양으로 살고 있니?’라는 등으로 조롱할 테니까요.

Q : ‘나’를 안다고 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굳이 ‘나’를 알 필요는 없잖아요?

단지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또, 그저 돈만 많이 벌고 싶다면 굳이 힘들게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요. 그럴 시간이 있다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하여 노력해야겠죠?

Q :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자신을 알고 싶어 할까요?

설문조사하는 중인가요? 그렇다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한테 직접 물어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인데. 아무튼,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니 그런 의문을 갖고, 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자신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고 싶은 까닭에 그런 노력을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고요.

Q : 네에. 그런데 그런 노력은 돈을 많이 번 뒤에 해도 늦지 않잖아요?

‘나’를 아는 것은, 또,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아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준비를 많은 돈을 번 뒤에 하겠다는 것은 왠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이 세상에서의 본격적인 삶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Q : 물론 그렇기야 하죠.

그리고 삶의 목표를 돈을 많이 번 뒤에 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언제나 많은 돈을 벌게 될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80살이나 90살이 되어서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면, 그때 가서 삶의 목표를 정하겠어요? 아니, 많은 돈을 벌기도 전에 죽는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해요?

Q : 왜 그런 재수 없는 말씀을 하세요?

실제로 많은 돈을 벌기도 전에 죽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으며, 또, 많은 돈을 벌었다가 모두 날리고 죽은 사람들도 많죠. 그렇다보니 많은 돈을 벌 가능성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죽을 가능성이 더 높은데, 그런데도 왜 그렇게 막연히 말하죠?

Q : 음

그리고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할까요? 물론,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직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어요.

Q : 왜요? 돈을 많이 벌면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게 되나요?

그 마음속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생각하며, 자신이 왜 사는지 궁금하게 여기고, 또,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돈만 잔뜩 들어있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까요? 그럴 시간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겠어요?

Q : 그렇겠죠.

더구나 아직 삶의 목표도 세우지 못한 사람이, 아직 이 세상을 살아갈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이 많은 돈을 갖게 되었다면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해서 흐지부지 모두 날릴 가능성도 매우 크답니다. 실제로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던 사람들 중에 도박에, 술에 취해서 부모가 힘들게 모은 재산을 날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죠.

Q : 저도 알지만, 그래도 지금은 제 자신을 아는 것보다 돈이 훨씬 더 급합니다.

존재의 목적을 아는 것보다는 존재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군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냥 그대로 하면 되지, 뭐하려 나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나요?

Q :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돈을 벌기 위하여 태어났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그런 이유로 태어난 사람이 아무도 없답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그중에서 단지 부자가 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은 한명도 없었죠. 그저 자기가 좋아서 그런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따라서 열심히 돈을 벌었을 뿐이니까요.

Q : 이번에는 어떻게 그렇게 단정해서 말씀하실 수 있죠?

그 정도도 모르면서 ‘나를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턱도 없죠. 게다가 그 정도는 자신이 누구인지만 알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답니다.

아직 그만하지 못해도 어지간히 짐작할 수도 있고요.

'푯말의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미대강사 이야기  (0) 2011.08.18
‘나’를 알게 될수록  (0) 2011.08.18
‘나’를 알면 2  (0) 2011.08.18
‘나’를 알면 1  (0) 2011.08.18
‘나’를 알기 싫은데  (0) 201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