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대강사 이야기

2011. 8. 18. 23:09푯말의 대화

(우연하게, 자신을 모 명문대 미대의 강사라고 밝힌 사람의 푸념을 듣게 되었다)

Q : 저는 도무지 제가 그린 그림에 만족을 못하겠어요.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요?

예술이란 결국 ‘자기표현’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학이나 미술, 혹은, 작곡 등의 창작분야는 더욱 그렇죠. 그렇다보니 작품에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때에는, 즉, 작품에 자신을 제대로 담지 못했을 때에는 당연히 그만큼 만족할 수 없는데, 보나마나 그런 이유로 계속해서 그런 갈등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Q : 그런가요? 아무튼, 4년이나 노력했는데도 이러네요. 그래서 사실, 요즘 갈등이 무척 심해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할지, 아니면, 그만 접어야 하는지?

4년이나요? 그렇게 오래 노력했는데도 아직 그 정도라면 투자한 것에 비해서 얻은 것이 너무나 작군요. 하긴, 정확한 방법을 모르거나 방향을 조금이라도 잘못 잡으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해도 기대하는 만큼 얻지 못할 수도 있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Q : 그럼 어떻게 해야지 제 스스로 제 작품에 만족하게 될까요?

당연히 작품에 자신을 온전하게 담을 수 있어야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하고요. 알지 못한다면 아예 담을 수도 없으니. 그렇다보니 자신을 아는 만큼 더 잘 자신을 담을 수 있게 되는데, 따라서 특히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를 알아야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세요. 그렇게 하면 머지않아서 더 이상 자신의 작품에 불만을 느끼지 않게 될 것입니다.

Q : 네에. 하지만 ‘나’를 안다는 것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니잖아요?

무엇을 하든지 그 정확한 방법을 모른다면 당연히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죠.

마침, 내가 그 방법을 가르치고 있으니, 형편이 된다면 와서 배우세요. 강사님의 수준을 보아하니, 한두 달 정도 지나면 차츰 ‘자기표현’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때부터는 조금씩 자신의 작품에 불만을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Q : 4년 동안이나 못 이룬 것을 어떻게 한두 달 만에 이룰 수 있죠?

강사라고 하시니 잘 아실 것인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혼자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선생에게 배운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겠죠? 만약 두 사람이 아무 차이가 없다면 굳이 선생을 찾아가 배울 필요도 없을 텐데,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달리, ‘나’를 아는 데는 별다른 재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생각만 있다면 결코 어렵지 않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죠.

Q : 그런데 사실, 저는 작가보다 교수를 희망합니다. 그렇다보니 작품 활동보다는 강의를 하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래요? 그럼 더 잘되었네요. 미술 등의 예술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강사님과 같은 고민을 하는 대학생들이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는 그런 학생들도 모두 지도해야할 것이니 더 열심히 자신을 알기 위해서 노력해야겠군요. 언제인가, 제자보다도 한참 수준이 낮은 무용선생이 ‘너는 왜 나처럼 못하니?’라며 자기의 제자를 야단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꼴이 되지는 말아야겠죠?

Q : 그래야겠죠. 하지만 지금은 몇 달 뒤에 있을 교수시험에나 충실하렵니다.

흠. 실력보다는 자리가 더 소중하다는 말인가요? 물론,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리도 무시할 수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력을 무시하면 될까요?

그렇게 했다가는 결국, 조금 전에 이야기한 무용선생이나 이제까지 강사님을 지도했던 교수들처럼,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게 될 것인데요. 그러니 그보다는, 기회가 생겼을 때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Q : 교수가 된 뒤에 그런 노력을 해도 안 늦잖아요?

그렇다면 질문을 한 가지 더 하죠. 이미 실력을 갖춘 사람이 교수가 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하여 더 나을까요? 아니면, 교수가 된 뒤에, 그것도 필요하다 생각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실력을 갖추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더 나을까요?

Q : 그거야 뭐.

언제인가, 어떤 미대 교수가 TV에 나와서,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미술을 한 단계 아래로 생갹한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같은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엄청난 창피함을 느꼈는데, 다른 과목도 아닌 미술을 가르치겠다면 최소한의 실력은 있는 상태에서, 즉, 이미 어느 정도 자신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요?

Q :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제게는 ‘나’를 아는 것보다 교수자리가 더 급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급한 불부터 꺼야 마음이 편할 테니까요.

그러나 교수가 되도 학생들에게 결코 ‘나처럼 해라’, 혹은, ‘나를 따라 해라’ 말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가르쳤다가는 보나마나 학생들도 오랫동안 강사님과 같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며, 또, 오랫동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강사님과 같이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그린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겠다.’ 말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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