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고 이기기

2014. 4. 3. 02:38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때, 내 바로 앞줄에 앉아있었지만, 워낙 말이 없다보니 같이 어울린 적도 없는데다 말도 거의 섞지 않았던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그는 괜히 시비를 거는 등 마땅한 이유도 없이 노골적으로 나를 미워하는 티를 내기 시작했는데, 몇 번 잔뜩 혼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기회만 있으면 시비를 걸었다.

비꼬거나 대놓고 시비를 거는 등으로.

이놈이 왜 이러지? 내가 무슨 엄청난 잘못을 했기에 이토록 나를 귀찮게 하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그래서 몇 번인가 그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내가 먼저 사과까지 하면서 몇 차례나 화해를 요구했는데도 그때마다 그는 무시했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뿐만 아니라,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다른 반이던 큰 등치의 자신의 친구들까지 끌어들여 더욱 나를 귀찮게 했다.

그때부터는 나도 그를 싫어하게 됐는데, 그렇다보니 나는 그와 어쩔 수 없이 앙숙으로 지내야했다.

그런데 3학년이 된 뒤, 그처럼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아이를 한꺼번에 4명이나 만났다.

무슨 복이 그렇게도 많았는지.

대략 그때쯤부터 이 세상 어디를 가든지 나를 싫어하는 적은 꼭 있다생각하게 된 듯싶은데, 다행히 그중에서 한 명과는 어렵지 않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그의 약점을 내가 딱 한번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뒤, 괜히 시비를 거는 등 그는 더 이상 쓸데없이 괴롭히지 않았으니.

아하! 적의 약점을 알면 싸우지 않고도 적을 이길 수도 있고, 적과 친구가 될 수 있구나!’

그전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을 그때 명확하게 확인한 뒤, 한동안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약점을 캐내기 위해 노력했었다.

마치, 간첩이라도 된 듯이.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점점 더 남의 단점에만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런 내가 싫어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에는 곧 흥미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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