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3. 11:16ㆍ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요즘은 닭을 즉시 조리할 수 있도록 충분히 가공해서 팔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닭을 즉석에서 잡아주는 곳을 서울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중국집 주방에서 사용하는 네모난 모양의 큰 칼로 살아있는 닭의 목을 뎅강 쳐내 피를 충분히 뺀 뒤, 아직 버둥거리는 닭의 몸뚱이를 뜨거운 물이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 속에 집어넣었다가 꺼내 털까지 모두 뽑아주는.
그런데 가끔은 집에서 직접 닭을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문적으로 닭을 잡는 사람보다 도구나 실력이 많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독한 표정으로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렇다보니 훨씬 더 잔인함이 느껴졌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굴이 저절로 잔뜩 일그러졌다.
‘어우, 끔찍해’
그런데 여러 해 전, 어느 날 만난 치과의사인 한 친구가 대학에 다니던 때의 이야기를 잠깐 들려줬다.
“사람을 해부하기에 앞서 개구리해부, 토끼해부의 순으로 점점 더 어려운 해부를 하는데, 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동물을 직접 해부하고 나면 도무지 감당이 안돼서 해부수업이 끝나고 나면 모두들 해부한 동물을 들고 술집으로 달려갔지. 그리고는 해부한 동물을 안주로 만들어서 술을 엄청 먹었다.”
한편으로는 서글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웃긴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그를 비롯한 그 친구들이 당시 느꼈을 온갖 복잡 미묘한 감정이 어렴풋이 떠올랐는데, 이어 어린 시절에 봤던 닭을 잡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의 온갖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마취를 한 토끼를 해부하고도 그 정도였다면 펄펄 살아있는 닭을 잡던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또, 그보다 큰 돼지나 소를 잡던 백정이라는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내 생각은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갔던 군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힘들어하는구나.’
뒤이어 사람을 죽인 뒤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사람들의 말도 이해됐는데, 그러자 여러 명의 사람을 죽이고도 오히려 큰소리를 치던 연쇄살인범이 떠올랐다.
‘도대체 그 인간은 얼마나 독하기에 사람을 그렇듯 여러 명 죽이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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