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천덕꾸러기가 되다

2014. 4. 6. 09:58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이 병원, 저 병원을 들락거리던 고등학교 3학년 초의 어느 날.

바로 뒤에 앉아있던 한 아이가 내 등을 쿡쿡 찌르더니 잔뜩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 꾀병이지? 진짜 아프면 진단서 뗘와.”

담임선생님께 이미 양해를 구하고 병원에 다니고 있건만, 웬 황당한 소리인지.

내가 아프다는 것을 너한테 증명해줘야 하는 이유가 뭔데?’

말 같지도 않아서 그냥 무시하고 말았는데, 그의 말을 시작으로 괜히 시비를 거는 등 같은 반이던 몇몇 아이들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아픈 사람 위로를 해주기는커녕 왜 이래?’

하지만 처음에는 그냥 잠자코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로 피해를 주는 것 같았던 데다가, 아픈 나를 대신해서 체육수업 등에 참가하는 등 실제로 피해를 줬던 아이도 여러 명이 있어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고, ,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할지 생각하다보니.

그런데 계속해서 가만히 있자 정작 내가 피해를 줬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용히 있는 반면, 나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아이들도 점점 온갖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하나둘 덤비기 시작했다.

어쭈, 이것 봐라? 이것들까지 나를 밥으로 보네.’

더 이상 참았다가는 또 천덕꾸러기가 되겠다싶었는데, 불쑥 몸에 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됐다.

이렇게 된 김에 어떤 놈까지 덤비나 좀 더 두고 보자

그렇게 며칠을 더 참자, 이번에는 3학년이 된 뒤 말을 겨우 두세 마디 나눌 만큼 서로 관심이 없던 한 아이가 찾아와 역시 되지도 않는 이유를 잔뜩 늘어놓으면서 말도 시비를 걸었다.

괴롭힘을 당하는 데도 계속해서 가만히 있으면 심지어 잘 모르는 사람까지 적이 될 수 있구나

그의 말을 들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깨닫게 됐는데, 그 뒤로 얼마 안 되어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별렀던 몇 아이에게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어릴 때 그랬듯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따로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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