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통한 사람공부 5

2014. 4. 22. 15:22세상 속 이야기/푯말 이야기

고등학생 시절, 나도 책을 적게 읽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읽은 것도 아니었기에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은근히 부러워했는데, 더구나 내가 구경도 못한 책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열등감까지 느낀 적도 있었다.

나도 책 좀 읽어야하는데생각하면서.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뒤 만난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누구와 대화를 하든지 자신이 읽었던 책의 내용을 자주 인용했다.

누가 어떤 책에서 이렇게 말했는데라면서.

처음에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게 보이든지.

그러나 대화를 할 때마다 그런 말을 자꾸 듣다보니 점점 싫증이 나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내가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말까지 종종 인용하다보니 더욱 그들과의 대화에 흥미를 잃게 됐다.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저러는 거 아냐?’

그러던 어느 날인가, ‘내가 보기에는’, ‘내 생각에는등으로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생각까지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자신만의 생각이 없다보니 자꾸 남의 말을 인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면 남의 말을 인용하기보다는 이 사람들처럼 자신의 생각을 먼저 말하려고 노력할 텐데

그래서 그 뒤부터 꽤 여러 해동안 남의 말을 인용하는 사람을 볼 때면 그 부분에 대한 너의 생각은 뭔데?’ 물었는데, 특히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은 당황해서 우물쭈물할 뿐,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는 못했다.

역시, 자신만의 생각이 없다보니 그저 지식이나 자랑하는 것이었군.’

뿐만 아니라,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 중에는 나처럼 작자가 글을 쓴 의도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다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때의 실망감이란.

책을 많이 읽어보니 기껏 남의 말이나 대언해주는 앵무새나 녹음기가 되겠군.’

그렇다보니 그 뒤부터는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책을 읽으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내 자식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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